유금옥시인 찔레꽃 / 유금옥 산골 마을도서관 회원들은 하얀 틀니를 끼고 오십니다 오늘은 한글기초를 배우는 김순덕 할머니가 지각하셨는데요 사유인즉, 세수 깨깥이 하고 농협에 돈 삼만 원 찾으러 갔는디, 그동안 배운 이름 석 자 써먹으려고 펜대를 쓱~ 잡았는디, 아, 글쎄! 손가락이 벌벌 떨리고 ..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4.08.30
견고한 기도 /김주경 견고한 기도 김주경 바닥치는 삶이 싫어 벼랑을 올랐을까 인적 드문 육교 위 탁발 수행 저 여자 땀 절은 발자국을 찾아 견고하게 엎드렸다 몇 장의 지전들이 경전처럼 펼쳐지는 허공의 모서리가 방주처럼 안온해도 움켜진 두 손과 무릎 여전히 바닥이다 《나래시조》2014. 여름호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4.08.26
오월 / 고창환 오월 고창환 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이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큰 ..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4.05.28
木器에 담긴 밥을,/유홍준 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 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4.05.12
황혼에 대하여/고재종 황혼에 대하여 고재종 어쩌려고 마음이 경각에 닿을 듯 간절해지는 황혼 속 그대는 기어코 사랑을 질문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먼 데 둔다. 붉새가 점차 밀감빛으로 묽어가는 이런 아득함 속에서 세상은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나는 다만 방금까지 앉아 울던 박새 떠난 가지가 바르르 떨리..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4.01.27
내게 닿은 시 참된 인생의 해답은 산을 오르다보면, 바람 소리, 새소리, 나무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어느새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산과 하나가 돼 있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는 만큼만 믿고 생각한 만큼만 이해한다. ..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3.10.19
사라진 내가 아프다/김일연 사라진 내가 아프다 김일연 무성하던 목숨이 톱날에 베어지고 밑둥치만 남은 곳에 새 움이 돋아날 때 왜 그리 못할 짓인가 그 생나무 보는 일이 잘려 나간 몸통이 아파오는 환상통 푸르른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였구나 그대가 떠나간 후에 사라진 내가 아프다 시집《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3.10.05
붉은 지문/조연향 붉은 지문 -조연향- 지문 인식기에 내 지문이 비치지 않는다 홀연히 사라진 소용돌이를 일으켜 찍고 또 찍으며 폐허의 이유를 묻는다면, 살 밖의 일들을 자꾸 살 속으로 밀어 넣거나 숨기려 했던 일 끓어오르던 피를 잠재우듯 한 줄기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언덕 끝에서 새끼손가락 비틀..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3.10.01
주걱 / 박은형 주걱 박은형 개망초 흰 머릿수건 사이 여름 오후가 수북한 그 집은 가득 비어 있다 인기척에 반갑게 흘러내리는 적막의 주름 컴컴한 부엌으로 달려간 빛이 삐걱, 지장을 놓으며 눈썹처럼 엎드린 먼지를 깨운다 밥상을 마주했던 날들을 배웅한 징표일까 남은 것들로는 그림자도 세울 수 ..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3.09.26
어떤 스냅/민병도 어떤 스냅 - 민병도- 자벌레를 따라가다 빨랫줄에 딱, 걸렸네 몸을 던져 헤아려도 아득한 생의 엇길 달빛도 속옷을 벗은, 고요만이 환한 밤 먹을 갈다보면 -민병도- 먹을 갈다보면 시간이 온 길이 보인다 아무런 의심 없이 몸을 섞는 물의 뒤태, 눈물에 발목이 잠긴 발자국도 보인다 창보다 .. 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201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