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4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3회] 연둣빛 외출

- 견딜 수 있기에 시련의 봄은 환합니다 새순 돋우며 꽃망울을 부풀리는 계절 봄에는 지상의 초목과 하늘을 보며 우주의 아이가 되곤 합니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왔지만, 그 틈바구니로 슬몃슬몃 황사가 헤살을 부리는 날이면, 바람이 불청객인 황사를 몰고 오듯,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시련이 생기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삶은 한층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기에 참고 견디는 것일 겁니다.살다보면 여러 가지 난제와 불황으로 삶이 버겁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시련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함께 주었습니다.여린 움을 틔우던 나무가 거목이 되고 숲을 이루듯, 우리의 내일은 봄처럼 환하고 밝아지길 바래봅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고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2회] 겨울 비

어머니가 없는 그리움의 영토에 겨울비 내리던 날 ▲ (삽화=박소향) 겨울 비/ 김영미 봄빛을 풀무질하던 겨울나무는 허공에 걸린 가지를 합장하고 레퀴엠을 연주합니다 머리를 풀고 흐느끼던 숲이 별을 지나쳐 달의 우물을 건드린 걸까 닳은 뼈마디를 숨기느라 잇새로 삼키던 어머니 한숨들이 내려옵니다 맞잡은 손 차마 떨칠 수 없던 그 날처럼 비는 그렇게 하염없이 흐릅니다 백 년의 고독을 안고서 당신도 모르는 길을 가던 숲에서 새의 울음으로 서 있는 건 아니신지요 당신이 떠나던 날 따듯한 추억의 고향도 따라갔습니다 수천 번의 바람으로 당신을 부르면 꿈속에서라도 오시렵니까 나무는 연둣빛을 더하며 내일로 향하는데 슬픔의 영토를 헤아리던 그리움 관성 밖으로 부메랑은 격률의 이별 방식만 돌려보냅니다 [메모] 어머니는 신장암..

참시방앗간 11회-노가리 앞에서

- 내 안의 바다는 너만큼 출렁일 수 있을까 노가리 앞에서/ 김영미 노가리에서 염전 바닥을 스치던 바람 냄새가 난다 달빛을 등지고 들어서는 지아비 몸에서 맡던 그 냄새다 탄력 있던 육체는 욕망과 생존의 습기마저 포획당한 채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참선 중이다 구멍 난 삶으로 오염된 상처를 닦아내듯 애증으로 차오르는 가슴에 소주를 부어 넣는다 채우지 못한 내 안의 갈증으로 열기 오른 입술이 접시를 훑는 사이 몸통에 달라붙어 있던 지느러미가 날개를 펼친다 거세당한 꿈으로 가슴은 염전이 되는 동안 어린 명태들이 술잔을 튀어 오르며 파도를 가른다 짠 내와 갯내도 일렁인다 삼킬 수 없는 바닷물처럼 입전만 맴도는 파도 소리 때문에 난 결국 노가리를 씹지 못했고 마른 몸통을 툭툭 분지르는 손끝을 바라보며 깡술을 마신다..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0회]-연필을 깎다가

어둠도 두렵지 않았던 부모님의 든든한 품안에서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나는 지금도 만년필과 볼펜보다는 연필로 글쓰기를 즐긴다. 그리고 종이에서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로 내 존재의 마중물인 아버지를 만난다. 다정다감한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의 밤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등잔불과 반딧불 그리고 달빛과 별빛만으로도 빛나는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 외딴집에 저물녘이면 구석구석 어둠이 깃들었지만, 다정한 어머니와 든든한 아버지의 울타리 안에서, 그 어둠들은 동화 속 도깨비나 호랑이보다도 두렵지 않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동생들 돌보느라 바쁜 어머니와 함께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시며, 채굴 막장 노동으로 불거진 손으로 연필을 깍아주시던 아버지. 곱고 매끈하게 깎이는 연필을 바라보던 나는, 꿈나라에서 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