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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64회] 민들레 영토에 부는 바람

민들레 영토에 부는 바람 김영미 벽에 걸린 TV에선 화면이 폭발한 듯폭격에 무너진 건물들아이들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려요사람들은 죽어가는데화약 냄새나지 않는 침실이 오래된 폐광 같아요 소이탄이 그린 백색 소음을 삼킨얼음 알갱이 속 꽃잎처럼폭발 섬광이 스쳐 간 정적은 울음조차 가둬요 분식점 붉은 국물에서 집어 든 떡볶이가총상 입은 정강이뼈 같아 젓가락을 놓치지만햄버거에 콜라가 왜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나는아직 전쟁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꽃밭은 짓밟혀도 꽃이 피어나지만전쟁은 사람들 핏줄마저 끊어누구나 불행을 통해 영웅이 되길 원치 않아요 민들레 씨앗은 우주를 표류하며 이듬해를 꿈꾸고꽃은 성숙을 꿈꾸며 향기를 모아들이는데가자지구에도 우크라이나에..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63회] 신이 버린 쓰레기는 없다

신이 버린 쓰레기는 없다/ 김영미 서울 시청역을 지나칠 때마다환영처럼 떠오르는 립스틱천사 이정표보다 먼저 눈길이 닿는뽀얀 분칠과 새빨간 입술은자신만의 영역에서샛별이 되기를 원하는 표상일까 행인들은 찌푸린 눈살로 힐끔힐끔헬숙한 숙녀를 바라보며‘노숙녀’라 부른다 숟가락 하나로 모두를 소유한 그녀는온전한 자유인이 아닐까염세주의를 삶 속에 숨겨놓고 있다는 건인간적인 최후의 보루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곳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그 경계를 더듬적거리다내 안의 나를 잃어버린 그녀 회색빛 도시풍경에서 폭발하던 붉은 빛쓸모없다고 착각한 쓰레기 더미에서빛나는 별들을 보는 순간묵은 감성이 관절을 펴며창백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다 신이 버린 쓰레기는 없다 [作詩 메모]- 창백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며지하철역에서 립스틱 천사..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62회] 도자기 축제에선 사금파리도 빛난다

도자기 축제에선 사금파리도 빛난다 김영미 이천 사기막골 굴뚝에서 보낸 연기로흙이 산란하는 진통을 수어로 받는다도공의 손길은 하늘의 이치와 맞닿아누군가 풀다 만 천기를 빚어내는 고독한 일 물레가 가끔 한쪽으로 일그러질 땐제 안의 형상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참거나또 다른 균형을 붙드느라 진땀 흘린다 체류 허가증에 짓눌린 티엔민*의 점토는투자사기로 중심축을 벗어나고국에서 품은 꿈은 깨어지고 어간장 발효하던 청동색 거품이푸토성 논밭에서 자란 손금에 스미듯가마 속 규산염 눈꽃과 맞닿을유약 배합 비율이 손에서 익어간다 수천 년을 거슬러 발현한 도자기를 품은설봉산기슭에 앉아서무수한 과거와 돌아올 세상을 넘겨다보며세계화의 유속을 헤아린다 천여 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61회] 가시에 걸린 말씀

가시에 걸린 말씀/ 김영미 살점을 발라낼 때마다 은빛 가시가 빛난다바다의 깊이를 가늠하려는 듯젓가락을 뒤적이는 사이오전의 햇살은 주방 입구를 기웃거리고 저 햇살이 어우르다 온 호수에서지느러미와 가시가 단련되는 치어들솟구치는 생의 율동이 그물을 늘인다 물고기를 발라 먹는다는 건한 끼의 일용할 양식을 음미하는 일베드로 필생의 꿈에그물 내릴 곳을 알려 준 스승의 한마디로어부에서 사도의 길이 열렸던 날 아침 햇살이 구워낸 갈릴리호 기적을천연덕스레 발라먹다 마주한 가시가오병이어(五餠二魚)의 환청으로 찔렀을까 가시로 남겨지는 삶은아주 잠깐의 그림자일 뿐 가시의 경계를 벗어난 나를마주한 갈릴릴 호수불현듯 내민 손에 피돌기를 한다 참 기이한 한 편의 여행이다 [作詩 메모]- 빈자리가 향기롭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청..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60회] 해바라기 소나타

해바라기 소나타/ 김영미 아트 갤러리를 헤매다지친 하이힐에 이끌려 돌아올 때좌절된 미대생으로의 로망은인화성 짙은 고흐의 화실을 그리며노란 풍경에 환하게 스며들던 시절 어둠이 가파르게 쌓여가는세파골 축대 한 편으로 해바라기가 지나친다전쟁을 모르던 소녀친구의 54색 크레파스를 샘내던 12색의 갈증은아직도 짓눌린 현실과의 싸움 중이다 드론 포탄에 나비와 노닐던 꽃잎 흩어지고포탄이 엄습하는 우크라이나 밤하늘을 바라보는 건별바라기로 들끓던 꿈이 포연 속에 무너지듯 참혹할까 기울어진 벽과 파손된 건물 틈을 비집고펑펑 터지는 저 샛노란 꽃들의 반란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호주머니 속 땡볕 한 줌으로프로방스를 꿈꿀 수 있었겠는가 자고 나면 별들의 죽음을거리 저쪽의 장송곡으로 외면하다가교회로 향하는 건 몇 번째의 기도일까..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9회] 아버지의 바다

아버지의 바다/ 김영미  마을을 끌어안은 산 그림자 속으로온 밤이 숨으면후래쉬 불빛으로 길목을 밝히며묵직한 책가방을 말없이 받아주던 아버지 슬레이트지붕 촘촘한 고삿길 돌아가면공터는 텅빈 세계보다 꽉 찬 소리로아이들을 부르고문 열면 보이는 바다는 동화책 펼치며눈길 닿는 곳마다 디즈니랜드였다 아버지의 정착지는 보성군립요양병원이다평생 바다를 누비며 살아온노구老軀를 실은 병원은닻을 내린 범선이 되어 자유로이 갈 수 없는 유리 벽 안에서바람은 돛들의 연적이 되어 고향에 가닿고조난의 힘으로 풍랑을 이겨낸젊은 날의 무용담이 링거 속 바다를 누빈다 지나간 일들은 세월에 여과되면가난한 풍경도 정겨워백수를 넘긴 아버지는 아이가 되어가고환갑을 넘긴 아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손자가 아들인 듯 손녀를 딸이라 부르며기억의 바다는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8회] 봉화

봉화/ 김영미 밤하늘 별빛을 끌어안고어둠의 귀퉁이를 갉아대듯 요란하던개구리 소리도 닫아버린 아파트그는 1층에서 37층을 오르내리며담배 불빛으로 존재를 밝히는 중이다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삶의 계획들이내뿜은 연기처럼부풀던 바람은 흔적조차 사라져더는 삼킬 수 없어 한숨을 내뱉는 중이리라 ‘연체 중인 대출금 상환하지 않으면 아파트 공매’를 통보받은 그는위암 투병 중인 아내 치료비에층과 층 사이에 해답을 묻어두고 벽에 붙은 현수막과 티브이에선바이러스 확산, 경제 불황을 쏟아대니보이지 않아 허물 수도 없는 벽과 벽 사이가슴은 타는 연기로 자욱할 거다 흡연 공간처럼 귀퉁이로 내몰린 그는밤하늘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콘크리트 벽에선 논을 잃은 개구리 소리아파트 밖에선 그의 가슴으로 쏟아진 별들이빛을 발하며 봉화대에 오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7회]환절기

환절기 /김영미 어쩌면 저 안개는환절기가 새겨놓은 거대한 판화일지도 몰라지난밤 은행잎이 노란 형체에 발버둥 치는 동안  가로등 아래로 군중의 함성이 들리고배달 중인 우유 엎지르며 쭐렁 안개의 내부를 흐르던 방금 날아오른 새 한 마리는쉽게 잠들지 못한 불면의 후예일까한동안 두꺼운 판화를 쪼아대던 불면은이 시대의 조각가가 될 것이다 ‘지구를 살리자’를 걸친 쓰레기통 옆에서팝콘 몇 알로 긴 밤을 버틴 산짐승도다시는 지난 계절의 삭정이 위로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존층의 보호막이 사라지면태양은 지구에 위험한 존재라고  바람의 절벽을 할퀸 듯부윰한 판화를 깨트리며새 한 마리햇빛의 볍씨 한 알 물고 날아오른다 [作詩 메모]지난 가을에 곰실거리는 햇살들의 소환장을 받고서 은행나무 길을 걸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잠..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6회] 핸드폰 해체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핸드폰 해체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김영미 나는 가상 세계의 여행자온종일 핸드폰 속에서 산다입을 잃어버린 세상의 말들은비눗방울처럼 화면 속을 떠돌고 들꽃들 향기로 아우성치는 창밖사과 익는 내음에 분주하던 벌들을 놓치고딸기스무디 레시피를 따라가다영상으로 만나기를 즐긴다 실재하는 세계를 유기당한 채뇌 속에 저장되던 기억을유심칩에 맡겨두는 블랙홀에 빠지고 잠 못 이룬 밤의 늪에서새벽을 열어준 너는장마가 시작된 지구 밖의 염문과녹고 있는 빙하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면너부터 구원했을까 핸드폰과 나분리불안을 앓는 아이너는 나를 분석 중이다핸드폰 해체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作詩메모]핸드폰과 친숙해지면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