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연대기/ 김영미 이곳 어디쯤에선가 몇 줌의 바람과 음지의 날짜들이 발효의 관습을 보내게 될 것이다 흰 몸통의 줄기 가까이 이르러 파란 기억을 머금은 그쯤을 움푹 자른다 시래기, 나는 잠시 오래전의 농경이 가르쳐준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곤 벽 양쪽에 줄을 매단다 봄이 더디게 들어찰 뒤꼍 근처가 무청들의 물결로 눈부시고 그래, 먼 옛날의 어머니도 당신의 월동 한편에 먹거리를 섬겼을 것이다 겨울이 길어야 맛의 질서를 더 깊이 품어내던 바람과 바람 음지와 음지 사이의 영험한 내력들 어머니의 아침이 늦겨울 장독대에서 된장을 퍼오자 발효를 마친 시래기 몇 움큼 부엌 함지박으로 들어서고 그날 잘 떠지지 않는 내 눈을 깨워주던 아궁이 불씨는 어느 동화 속 이야기였을까 늦겨울 아침의 식욕은 늘 아버지의 시장기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