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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3회] 연둣빛 외출

- 견딜 수 있기에 시련의 봄은 환합니다 새순 돋우며 꽃망울을 부풀리는 계절 봄에는 지상의 초목과 하늘을 보며 우주의 아이가 되곤 합니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왔지만, 그 틈바구니로 슬몃슬몃 황사가 헤살을 부리는 날이면, 바람이 불청객인 황사를 몰고 오듯,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시련이 생기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삶은 한층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기에 참고 견디는 것일 겁니다.살다보면 여러 가지 난제와 불황으로 삶이 버겁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시련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함께 주었습니다.여린 움을 틔우던 나무가 거목이 되고 숲을 이루듯, 우리의 내일은 봄처럼 환하고 밝아지길 바래봅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고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2회] 겨울 비

어머니가 없는 그리움의 영토에 겨울비 내리던 날 ▲ (삽화=박소향) 겨울 비/ 김영미 봄빛을 풀무질하던 겨울나무는 허공에 걸린 가지를 합장하고 레퀴엠을 연주합니다 머리를 풀고 흐느끼던 숲이 별을 지나쳐 달의 우물을 건드린 걸까 닳은 뼈마디를 숨기느라 잇새로 삼키던 어머니 한숨들이 내려옵니다 맞잡은 손 차마 떨칠 수 없던 그 날처럼 비는 그렇게 하염없이 흐릅니다 백 년의 고독을 안고서 당신도 모르는 길을 가던 숲에서 새의 울음으로 서 있는 건 아니신지요 당신이 떠나던 날 따듯한 추억의 고향도 따라갔습니다 수천 번의 바람으로 당신을 부르면 꿈속에서라도 오시렵니까 나무는 연둣빛을 더하며 내일로 향하는데 슬픔의 영토를 헤아리던 그리움 관성 밖으로 부메랑은 격률의 이별 방식만 돌려보냅니다 [메모] 어머니는 신장암..

참시방앗간 11회-노가리 앞에서

- 내 안의 바다는 너만큼 출렁일 수 있을까 노가리 앞에서/ 김영미 노가리에서 염전 바닥을 스치던 바람 냄새가 난다 달빛을 등지고 들어서는 지아비 몸에서 맡던 그 냄새다 탄력 있던 육체는 욕망과 생존의 습기마저 포획당한 채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참선 중이다 구멍 난 삶으로 오염된 상처를 닦아내듯 애증으로 차오르는 가슴에 소주를 부어 넣는다 채우지 못한 내 안의 갈증으로 열기 오른 입술이 접시를 훑는 사이 몸통에 달라붙어 있던 지느러미가 날개를 펼친다 거세당한 꿈으로 가슴은 염전이 되는 동안 어린 명태들이 술잔을 튀어 오르며 파도를 가른다 짠 내와 갯내도 일렁인다 삼킬 수 없는 바닷물처럼 입전만 맴도는 파도 소리 때문에 난 결국 노가리를 씹지 못했고 마른 몸통을 툭툭 분지르는 손끝을 바라보며 깡술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