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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9회]-목련

칠판을 빠져나온 목련의 꿈으로부터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여고 시절의 봄날은 목련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하얗게 헤매던 꿈이 피어나듯, 운동장 한편의 빈 벤치를 환히 밝히던 목련. 교실 밖에서 아우성치던 꽃들의 유희도 뒤로한 채, 그 시절엔 책상과 칠판이 유일한 미래인 줄 알았다. 꽃그늘의 체적은 비좁았지만, 그 환영의 밀도는 짙고도 깊었기에...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잠깐씩 열었다 닫곤 했던 사월의 페이지. 밀월의 감정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몸소 체험이라도 하듯, 의식의 미세한 틈으로 유입 되던 여고 시절. 그 시절은 가고, 현실 속으로 밀려난 목련이 불치의 꿈을 부풀린다. 그 때, 칠판을 빠져나오던 목련이 지금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들녘이 펼쳐놓은 원고..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8회] 인연

조금만 더 견디시길...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출근 인파로 출렁이던 전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발가락을 밟혔다. 삶의 무게도 거뜬히 이겨내던 단단한 발은 느닷없는 상처에 욱신욱신 앓다가, 끝내 피멍 든 발톱을 밀어 내고야 말았다.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던 발톱처럼, 엉겨 붙은 삶의 꺼풀들이 어느 순간 내게서 빠져나갔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무감각 속으로 뺑소니치던 기억들. 돌아보지 못한 어제가 슬며시 사라지듯, 상처 난 마음도 세월의 파고를 견뎌야 무덤덤한 추억이 되나보다. 자녀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경기 광주에서 부천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떨어져 나간 발톱을 치료할 시간조차 허용치 않던 나날들은 기형의 발톱만 남겼다. 그래도 지금 그 아들과 딸은 국가와 사회의 역군으로 제 몫을 훌륭히 해..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7회] 나는 날마다 홀컵을 지나친다

모두의 마음 텃밭이 싱그럽기를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봄날의 마늘밭에 골프공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겨울을 견딘 마늘의 뾰족한 잎들이 새의 부리처럼 단단하게 골프공을 물고서... 제 촉수를 숨기고 마늘밭을 차지했던 삭풍과 겨울의 햇살 속으로 메마른 이름들이 지나치고, 들짐승과 참새들 발자취도 스며들었지요. 그곳에 속을 드러내지 않는 골프공이 제 삶의 뭔가를 잃어 홀컵이라도 찾은 듯, 마늘밭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을 다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무게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풍경입니다. 삶의 짊은 누구나 다르지만 그 중량감은 각자의 마음에서 작용하지요. 온 몸 가득히 봄을 충전하며, 우리 모두의 마음 텃밭이 싱그럽기를 바랍니다. 나는 날마다 홀컵을 지나친다/ 김영미 골프장 입구엔 위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