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참시방앗간 11회-노가리 앞에서

언어의 조각사 2024. 4. 14. 09:12

- 내 안의 바다는 너만큼 출렁일 수 있을까

노가리 앞에서/ 김영미

 

노가리에서 염전 바닥을 스치던 바람 냄새가 난다
달빛을 등지고 들어서는 지아비 몸에서 맡던 그 냄새다
탄력 있던 육체는
욕망과 생존의 습기마저 포획당한 채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참선 중이다

구멍 난 삶으로 오염된 상처를 닦아내듯
애증으로 차오르는 가슴에 소주를 부어 넣는다
채우지 못한 내 안의 갈증으로
열기 오른 입술이 접시를 훑는 사이
몸통에 달라붙어 있던 지느러미가 날개를 펼친다

거세당한 꿈으로 가슴은 염전이 되는 동안
어린 명태들이 술잔을 튀어 오르며 파도를 가른다
짠 내와 갯내도 일렁인다

삼킬 수 없는 바닷물처럼
입전만 맴도는 파도 소리 때문에
난 결국 노가리를 씹지 못했고
마른 몸통을 툭툭 분지르는 손끝을 바라보며
깡술을 마신다
간도 쓸개도 버려야 했을 지아비 빈 가슴을 바라보면서

치열했던 삶 가벼이 비우고
바다를 닮아가는 노가리 앞에서
치기 어린 도피를 꿈꾸는 내 독설은 서서히 말라가고
비우지 못한 욕망의 편린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창자 속까지 수분을 비워낸 마른 눈에서
난 왜 자꾸만 바다가 보이는 걸까
알콜로 마비된 가슴의 상처는 왜 자꾸만
몸통을 불리며 파도소리를 내는 걸까

 

시작메모-

시집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버린다>를 출간 후 출판기념회를 생략한 내게 절친 김경란 시인과 한승희 시인이 출판기념회를 하자고 했다.
‘노을’이라는 라이브주점에서 노가리 안주를 시켜놓고 세 여인은 뮤즈에 젖은 정담을 나누다가 누군가 “노가리 눈이 슬퍼 보여” 했다.

우린 각자 노가리에 관한 시를 써서 함께 논하기로 했고, 그날 귀가하면서 핸드폰 메시지에 쓴 글이 ‘노가리 앞에서’이다. 이 시의 배경은 가정 경제를 짊어진 모든 지아비와 지어미들의 삶이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관공서에 영업을 나온 모 회사 사원이 홍보지를 돌리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자꾸 이러면 업무 방해로 신고할 겁니다”라는 큰 소리가 들렸다.

업무에 바쁜 여직원이 거절했음에도 집요하게 홍보를 했었나 보다. 제삼자가 무안할 정도의 날카로운 소리였음에도 그 영업사원은 부서마다 모든 직원에게 홍보지를 돌리고 나갔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내 남편도 저런 모멸감을 참고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쓰럽고 무거워 보이던 그 뒷모습을 노가리에 환치시켜 쓴 글이다.
치열하게 살다 모두를 비워내고 의연히 누워 바다를 보여 주는 노가리를 두고 누가 ‘노가리 깐다’고 하였던가?

치기 어린 도피를 꿈꾸며 쏟아내는 독설과 허풍으로 종족 번식의 치열한 본능을 이해하고는 있는 걸까?
오늘도 내 안의 바다는 갈증으로 출렁인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지아비와 지어미의 삶은 위대하다는 걸...

 

삽화=박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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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11회] 노가리 앞에서 (thegol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