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8회] 인연

언어의 조각사 2024. 3. 22. 14:57

조금만 더 견디시길...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출근 인파로 출렁이던 전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발가락을 밟혔다.

삶의 무게도 거뜬히 이겨내던 단단한 발은 느닷없는 상처에 욱신욱신 앓다가,

끝내 피멍 든 발톱을 밀어 내고야 말았다.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던 발톱처럼,

엉겨 붙은 삶의 꺼풀들이 어느 순간 내게서 빠져나갔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무감각 속으로 뺑소니치던 기억들.
돌아보지 못한 어제가 슬며시 사라지듯,

상처 난 마음도 세월의 파고를 견뎌야 무덤덤한 추억이 되나보다.

자녀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경기 광주에서 부천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떨어져 나간 발톱을 치료할 시간조차 허용치 않던 나날들은 기형의 발톱만 남겼다.

그래도 지금 그 아들과 딸은 국가와 사회의 역군으로 제 몫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지금 막막한 시련이 앞을 가리고 있다면,  조금만 더 견디시길....

봄은 당신과 나를  향해 열리고 있는 중이니.

 

 

인연/ 김영미

 

 

어쩌면 그 사내의 행방도 지상엔
디딜 틈이 없었을지 몰라

 

한순간 내 엄지발톱으로 몰려든
낯선 생애의 무게
그가 자신의 균형 속으로 돌아가자
내 안을 비집는 검은 하중의 통증들

 

도대체 어떤 뒷굽이 보낸 느닷없는 기별이었을까
아픔의 진원지를 허용해 주지 않는 행방의 밀도 속에서
단말마와 머릿속의 비명이 초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통증은 또 다른 역에 도착하고

 

혹시 남몰래 주고받는
미필적 고의의 하중에도
전생의 소인이 찍힌 건 아닐까

 

 

▼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8회] 인연 (thegolftimes.co.kr)

 

삽화:박소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