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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시인

유리의 존재/ 김행숙 ​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