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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시.모음

핏덩어리 시계 김혜순 내 가슴 속에는 일생을 한번도 쉬지 않고 뚝딱거리는 시계가 있다 피를 먹고 피를 싸는 시계가 있고, 그 시계에서 가지를 뻗은 붉은 줄기가 전신에 퍼져 있다 저 첨탑 위의 시멘트 시계를 둘러싼 줄기만 남은 겨울 담쟁이처럼 나는 너의 시계를 한번도 울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내 핏덩어리 시계를 건드리지 않았다 참혹한 시계에게도 생각이 있을까 백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고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걸까 태양 시계를 쏘아보다 기절한 적도 있지만 바닷속으로 시계를 품은 내 몸통을 던져버린 적도 있지만 어떤 충격도 어떤 사랑도 이 시계를 멈추진 못했다 각기 출발한 시각이 다르므로 각기 가리키는 시각도 다른 우리 식구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묵묵히 시계에 밥을 먹이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시계를 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