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서른,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언어의 조각사 2007. 6. 12. 16:01
 


 서른,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1961년 서울출생/서울대 서양사학과졸업/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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