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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

축시// 김영미 친구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걷던 호숫가와 그곳에서 수선화처럼 피어나던 이야기들 그럴 때 마다 친구에게 읊어주고 싶던 푸쉬킨의 시를 떠올리다가 그것보다 더 환한 친구의 웃음에 낯설어 지던 나, 친구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선택한 그 걸음들 속에서 몇 줌의 대화만 갖고도 인생은 산책이 되고 아름드리나무에서 찾아낸 바이올린 하나가 되기도 하는 그 놀라운 시간들을... 그리하여 친구여 기억하는가 미래는 또다른 종류의 과거임에 우리가 걸어가는 저쪽에 더 많은 추억이 있을 것임을, 그곳에 백년의 사랑이 있었다니 그곳에 사철 마르지 않을 장미의 날들이 있었다니 친구여 기억해 주시라 우리가 늙고 더는 추억밖에 없는 날 그날에도 그 사랑 지상 최고의 산책이 되기를 최정임♡정진화 두분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2..

그룹명/사랑방 2022.10.11

9월의 우먼리더스

9월의 비표가 들꽃모자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멀미처럼 가파른 고샅길과 소문이 끊긴 집 안의 풍경, 언제부턴가 힘껏 깨워도 쇳소리만 낼뿐 물을 건네주지 않던 녹슨 펌프에 이르기까지 들녘으로 나가기 전의 마을 안은 고요가 비표가 되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너른골 광주의 풍경은 진취적이고 따듯합니다. 매달 만나는 반가움으로 에서의 9월 28일은 들썩이고 있었다. 관내 수해복구현장에서 또는 미래지향적인 탄소 중화 산업에 관한 교육 등등으로 우먼 리더스의 봉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토론하는 사이 8시 30분의 영업 종료를 알리는 업소의 안내로 우리는 주차장에서도 한참을 머물며 담소를 나눴다. 지방에서 워크숍 중인 전 시의회 의장의 빈자리를 아홉 명의 회원들이 사랑과 열정으로 채우던 9월의 밤..

그룹명/사랑방 2022.09.29

환절기

환절기/ 김영미 일교차가 다녀간 새벽 저 흰 무리들은 불면의 자객이었을까 창과 밖의 거리는 지워지고 구름 위 하늘만 푸르다 몇 개의 아파트와 건너편 숲이 흰 통증 속에서 벗어나고 무겁게 멈춰있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란 전설을 찾지 못한 채 하나씩의 가로등을 풀어 주고 있다 순간 내가 신선인 듯 몽환의 길에 든다 불면으로 휘청이던 새벽 구름 속 37층은 공중부양 중이다 어둠은 그늘조차 파종할 수 없는 것 달빛에 감긴 간밤 꿈이 계절을 염탐한 안개와 함께 가로등 안으로 사라진다 더 깊은 곳으로의 은신과 묵정의 날들을 견디는 동안 1층에서 37층을 오르던 세월의 간극도 사라졌다 안개 속에서 여름날의 단서를 찾는 동안 태양은 때늦은 나의 독백을 공중으로 밀어내고 창밖 풍경을 말끔히 펼쳐놓는다 태양의 울타리 안에서..

시작노트 2022.09.22

옹이가 있던 자리 / 이윤훈

옹이가 있던 자리 / 이윤훈 울타리 한켠 낡은 잿빛 나무판자에서 옹이 하나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고 아이가 물끄러미 밖을 내다본다 그 구멍에서 파꽃이 피었다 지고 분꽃이 열렸다 닫힌다 쪼그리고 앉아 늙은 땜쟁이가 때워도 새는 양은냄비 솥단지를 손질하고 겨울의 궤도에 든 뻥티기가 등이 시린 이들 사이로 행성처럼 돈다 꿈이 부풀기를 기다리며 코로 쭉 숨을 들이키는 이들 홀쭉한 자신의 위장을 닮은 자루를 들고 서 있다 이승의 끝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나는 아이의 그 크고 슬픈 눈과 마주친다 나는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그 구멍으로 저켠 길이 굽어드는 곳까지 내다본다 누가 잠자리에 들 듯 목관에 들어가 눕는다 뚜껑이 닫히고 어둠이 쿵 쿵 못질하는 소리 문득 옹이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

8월의 우먼리더스!

구름은 은유가 되지 못한 메마른 날들의 서정시겠지요.. 장마를 딛고 새벽을 건너온 9월은 말끔하게 지워진 칠판 속 사연 같은 한가위가 있는 달입니다. 건강하게 가슴속 보름달을 부풀리며 곧 찾아올 추석명절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광주시 우먼리더스의 8월에는 경기 광주시 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으로 시행된 '찾아가는 영화관' 와 함께 2022년 8월 31일 수요일 남한산성에 위치한 에서 담소를 나눴습니다. 가야금연주와 민요공연에 이은 영화관람으로 8월을 향기롭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장마로 곳곳에 수해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그동안 광주시청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경관은 빛을 잃지 않았고 두분의 빈자리가 아쉬웠지만, 소미순지도자님과 금미영지도자님의 차량봉사로 편안하고 즐거운 우먼리더스의 회합을..

그룹명/사랑방 2022.09.02

그늘의 시간을 보다/김영미

그늘의 시간을 보다/김영미 얕은 산속을 산책하다가 문득 눈이 띈 버섯무리들, 현란함으로 보아 독버섯임에 분명하다 노란빛 혹은 형형의 색채 속에서 독성의 날들을 보낸다는 것 썩거나 죽은 나무의 그늘을 섭취하며 햇살의 반대편을 느린 생애로 버텼을, 내 안의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무례한 감정의 방문과 현란한 타협을 요구하는 젊음의 뒤안길에서 나의 사랑도 아픔들 상처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의 은신처를 빌려야 했으리라 사랑은 독이다 아니, 내 안의 느린 시간을 보호하기 위한 썩은 양분들이다 습기 찬 계절 속을 서성인다는 건 얼마나 찬란한 관습이던가 나는 그늘들의 시간을 지우고서 밤의 입구 이슬들이 몰려오는 또 다른 감촉들에게 귀를 적시기 시작한다 2022년 문학청춘 발표작 2022년 착각의 시학 사화집

시작노트 2022.08.30

낡은 풍경에서 깨어나다

낡은 풍경에서 깨어나다/김영미 고택에 든다 쇠락한 시간이 이곳저곳 널브러진 조그마한 안마당이 주춤 기억의 뒤로 숨고 뒤꼍으로 향하는 처마 옆 살구나무만이 노란 인사를 하는 곳 이제 다시는 청빈의 주소를 꿈꾸지 않으리라던 쓸쓸한 독백과 절구 속 봄날의 가난을 눈물로 빻던 곤궁한 푸념들이 되살아나고 어쩌면 이맘때는 아니었을까 내가 논두렁 너머로 곡선의 심부름을 하며 아버지의 막걸리에 취한 그날 오후와 풀잎처럼 지친 몸을 맞이하던 고택의 지조 방금 뒤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바람에도 단추 같은 열매를 몇 개 내줄 것 같은 늙은 감나무 풍경을 상상해 보는 일 고택은 그러나 고택을 꿈꾸지 않는다 낡은 풍경을 복사하지도 않으며 그렇다면 지금 고택이 꿈꾸는 건 정작 무엇일까 맨 처음 자신 속에 주소를 열었던 바로 그..

시작노트 2022.08.13

늘 봄을 안겨주는 다인이

입춘/ 김영미 이제 겨울은 기소중지 되었다 베란다 밖 소문들은 자코메티의 조형처럼 길어지기 시작했고 누군가 실려 온 이삿짐엔 별거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선인장 속 사막이 꽃이 되려면 두 마리의 낙타가 필요할지도 몰라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나의 신분이 미행당하는 듯한 그 짧은 느낌들은 햇살들의 과소비일까 아니면 나만의 조급증일까 어쩌면 봄은 기소되지 못할지도 몰라 한때 나는 먼 시간 저쪽의 소문들을 찾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찾아본 적 있었다 바다를 넘었고 *작은 섬에 이르러 지문이 아니고는 읽어낼 수 없는 화석의 시간을 짐작하곤 했다 미래로 돌아가는 일은 시간의 풍랑을 만나는 일이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내 안의 권태를 버린다는 것 봄날은 더디 갈 것이다 마루 속 10년 전의 표정도 영정이라는 계절 속에..

그룹명/사랑방 2022.07.21

노숙자

노숙자 김영미 빛들의 사각지대 희망이 엿볼 수 없는 곳에 사내 하나 멈춰있다 아침 출근길 혹은 저녁의 분주한 약속들의 저지대를 몇 모금의 알콜 몇 줌의 절망을 덮고서 긴 수면 속을 뒤척인다 도시의 모퉁이에서 주워온 절망이 덜 탄 담배꽁초를 만지작거리며 낮과 밤이 중단된 후미진 안쪽을 성지처럼 지킨다 그의 출처도 처음부터 지하의 주소는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주말이 종교였으며 달력의 날짜들은 오래가지 않아 추억으로 바뀌던 시절, 해바라기가 없었다면 공중의 햇살들은 어디로 몰려가서 실낙원을 쓰고 있을까 햇살은 또다시 원죄를 덮고서 해바라기에게 돌아올 것이다 저 사내도 분명 서풍이 불었거나 아내의 생일이 잘 보이는 달력의 날자 속으로 출퇴근했을 것이고, 지금 도시는 미지수다 2022.07.19 시작메모----..

시작노트 2022.07.20

광주문학.25호 발간을 축하하며

광주문학.25호 이곳, 오래도록 달려온 문장들의 역사를 봅니다. 세월의 견고한 페이지들과 한 계절 강이 될 사연들, 미루나무처럼 추억의 위치가 될 것들에게 감성의 토목공사를 하는 동안 어느덧 스물다섯 해 그렇게 달려온 날들이었지요. 더 너른 지면을 연다는 것 누군가는 소설의 길로 누군가는 몇 줄의 수사를 완성 짓기 위해 감성의 세계를 밝혔던 날들... 의 오랜 발자취를 자축합니다. 이후 우리가 다시 어떤 이야기의 모퉁이에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꼬옥 맞잡은 재회의 체온은 따듯할 것이고 우리가 우리에게 가는 머나먼 여정 속의 이여 그 이름 영원히 빛나기를, 광주문협 제 9대화장 김영미

카테고리 없음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