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음에 대하여 / 박경원
해묵음에 대하여 / 박경원 원래의 길이 지워진 녹슨 나사를 풀다가 나는 보았다, 녹이 벗겨지고 잇몸만 남은 수나사에 비해 아직은 생생히 남아 있는 암나사의 해묵은 틈, 이가 주저앉은 자리마다 세월의 꽃이 피어 원래의 청춘을 버리고 그리움의 뒤안길로 견뎌온 우리들의 녹슨 골목길도 함께 보인다. 빠진 못자리처럼 녹슬고 지친 눈빛을 닦으며 돌아오는 길 나무 아래 작은 벌레들의 울음에도 헐거운 발길을 곧추세우는, 평생 샛길 한번 내지 못한 골목과 골목 사이 우리들의 작은 풍경. 문패가 바뀌고 늦은 귀가의 흐느적한 노랫소리 지워졌어도 그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텅 빈 정적을 흔들어 깨우는 습관의 해묵은 자리는 깊은 밤 떠난 사람 아닌 우리들의 몫이다. 밤새 서성이던 골목도 잠들어 이제는 눈 좀 붙여야지, 하며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