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틈새 김영미 틈이 생겼다 틈을 비집고 나온 빛은 잠든 영혼을 전율케 한다 벽이 두꺼울수록 파열음은 더 큰 날을 세우고 심장을 찌른다 생존을 알리는 짜릿한 통증이다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어둠과 빛은 서로에게 잦아들고 서로를 밀어 냈으리 틈이 생기기까지는 새벽빛으로 밤안개로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4.12
숨겨진 길 숨겨진 길 김영미 내 손에는 숨겨진 길이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들소의 혼을 닮은 나물빛이다 허기진 속 채워주려 산야를 누빈 까맣게 물든 할머니 손끝 돌보다 강한 흙을 닮은 땀빛이다 핏줄당기는 삽질로 옹이진 굳은살 터진 아버지 손바닥 눈물이 발효..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3.18
물을 내리며 물을 내리며 김영미 옷 속 살을 구겨 넣으며 생각한다 내안의 바람집도 비계덩이로 채워지고 있음을 먹물로 마비된 구린 맘속 찌꺼기도 물과 함께 흘려보낼 수 없을까 가슴은 없고 말만 떠다니는 세상 몸 속 구멍마다 냄새를 뿜어도 영혼만은 향유로 닦아낼 수 없을까 기름 낀 때 혼불로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3.16
민들레 민들레 김영미 맞잡을 수 없는 손길이다 단절된 사랑은 곰팡이처럼 피어오른 마른 목마름 하늘 뒷자리까지 날고 날은다 가신 님 무덤가를 맴돌던 발정난 그리움이 곪아 터지면 저렇게 애절한 빛고움 될까 발아 못한 사랑이다 올무 걸린 후회는 닳아빠진 필름처럼 구멍난 가슴 보고픔도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3.07
무갑산 *무갑산 -탈피를 꿈꾸며- 김영미 詩바라기에 타는 목마름 하얗게 쏟아낸 하늘을 업고 있는 무갑산 밤새 그들만의 잔치로 끝난 눈꽃세상은 출근길 몸살을 앓고 있다 빛이 있어 영롱한 눈 맞춤, 빛으로 인해 벗겨질 옷 속엔 질척이는 욕망이 꿈틀대고 마디마디 생존을 끌어안은 지렁이처럼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2.20
손등 손등 김영미 바람 키 재던 먼지조차 끌어안은 등 굽은 담장 기왓장에 저승꽃이 피었다 세월이 길을 낸 지붕에 엎드려 부서진 상처를 감싸는 이끼가 곱기도 하다 저승꽃 핀 감나무 껍질 같던 어머니 손등 담장 길 따라 굽은 등 곧게 펴고 저승길 돌아와 시린 손 감싸주며 불효의 회한까지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1.25
겨울밤이 녹다 겨울밤이 녹다 / 김영미 경매 후 더욱 분주해진 가락시장에서 겨울밤을 녹이는 꽃을 보았다 화려한 카페여인의 늘씬한 각선미보다 매혹적으로 두툼한 솜바지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건넨 커피가 종이컵에 담긴 시린 가슴 녹인다 커피 한 모금이 영혼의 심지에 불을 붙인 듯 얼굴까지 홧홧..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8.01.15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버린다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버린다 / 김영미 용꿈 꾸는 지렁이가 시멘트바닥을 뒹구는 쓰레기장 소주병에 갇힌 불어터진 꽁초가 속 터진 넋두릴 곱씹고 있다 삼킬 수 없어 내 뱉던 상념의 토막들이 분해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고 곤두박질한 주식과 면접관의 구겨진 이맛살을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7.12.26
*은행나무 *은행나무 김 영 미 샛노랗게 신열 오른 은행 양수 터지는 냄새로 진통 삭이다 알몸으로 세계를 연다 시멘트블록 틈새 뿌리를 뻗고 푸른 실핏줄 부풀려 지친 길손에게 그늘 드리워 노란 날개옷 바람결에 벗어주고 제 발등도 덮을 수 없는 맨발의 어미 마디마디 감은 눈 초록꿈 켜고 땅속 ..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7.11.23
언어의 조각사 언어의 조각사 김영미 시의 원석을 고르고 모아서 가슴에 당겨진 혼불로 당금질해 고운 숨결 불어넣어 다듬어보아도 시의 바다에서 헛물켜다 침몰하니 명작으로 향한 갈증 더해만 가고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언어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면 저승길 돌아와 책갈..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200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