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90

장독대 풍경

장독대 풍경 / 김영미 나 죽기전에 장맛을 잇거라 며느리는 메주꽃, 곰팡이를 털어내며 다소곳이 박꽃웃음 짓습니다 바닷물 졸여 하얗게 피운 꽃 약수에 몸을 풀어 하늘을 낳고 메주덩이는 천지신명에게 무명버선 내어주고 숯검뎅이 눈썹, 빨간고추 연지찍고 새끼줄로 팡팡한 허리를 묶고서 솟구치는 젊음을 곰삭이고 있습니다 하늘이 빠져있는 항아리 안에는 햇살이 잠방잠방 뛰어 놉니다 바람도 남실남실 콧노래를 부릅니다 짭조롬이 익어가는 장맛 대물림 2005.1.18 김성로 [어머니 장독대] 45*45cm, 한지위에 수묵.

창 / 김영미 좁은 창으로 빛이 기어들어온다 구들장에서 전해지는 냉기보다 시린 가슴을 저미는 청구서의 무게 하루 노동을 보장받은 오늘 새벽공기는 빈속에 털어 넣는 소주처럼 짜릿하다 공구 먼지를 닦으며 가슴속 거미줄도 걷어낸다 노동자 등줄기에 솟는 땀방울은 겨울 가슴이 뿜어내는 긴 호흡이다 노동현장의 거친 소리는 생기 돋우는 진솔함으로 상스런 음절에서도 사람냄새가 난다 아담의 짐에 눌려 갈라진 발꿈치처럼 결코 싫지 않은 먼지를 털고 마른기침 삼키며 돌아 선다 후미진 골목, 길과 맞닿은 창문불빛이 따듯하다 언 가슴 깊은 곳에선 빛알갱이 터지며 날개 돋는 소리. 200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