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길
김영미
내 손에는 숨겨진 길이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들소의 혼을 닮은 나물빛이다
허기진 속 채워주려 산야를 누빈
까맣게 물든 할머니 손끝
돌보다 강한 흙을 닮은 땀빛이다
핏줄당기는 삽질로 옹이진
굳은살 터진 아버지 손바닥
눈물이 발효된 양념빛이다
피돌기 살 돋움을 이어준
장아찌 냄새 밴 어머니 손결
튜닝한 손톱
향내 나는 손보다 더 아름다운,
그땐 부끄럽고 싫던 그 손이
그리움 따라 펼쳐지고
내 손에선
겨울 견디고 움튼 나물 뜯는 소리,
땀 밴 손바닥의 온기와
마르지 않는 사랑이 빚어낸 냄새가
숨겨진 길 넘나들며 숨쉬고 있다.
08.03.15
난 손에 대한 complex가 있었다.
내 손은 주름이 많아서 어릴 적엔 할머니 손 같다는 놀림을 당하곤 했다.
어머니손이 그러하고, 외할머니손이 내 손 모양과 비슷하다. 일테면, 외탁을 한 셈이다.
초등학교시절, 용의검사 때면 깔끔하게 정돈되어 지적은 안하셨지만,
내 손을 보며 빙그레 웃던 담임선생님 미소가 미운 손 때문인 줄 알고
부끄러워하다가 쓴 일기장 속 글을 기억해본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손이지만, 난 이손으로 큰일을 할 것이다.'
지금, 그때의 다짐처럼 큰일을 해내진 못했지만,
아름다운 손에 대한 개념은 어릴 적부터 확립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