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흰밥도 눈물을 흘린다

언어의 조각사 2022. 11. 14. 23:47

흰밥도 눈물을 흘린다//김영미

 

 

아버지의 온기가

구들장 내력을 묶어놓은 오전

누군가 시루 속 콩나물을 깨워 놓고 간,

참 이상도 하지

문종이를 통과한 햇살의 잔영에도

제 음표의 고개를 드는

그 빛나는 여백 속에서

내가 꿈꾼 것들은

어떤 허기의 아랫목을 기억하는 걸까

열려라 흰밥

그 순간

아버지의 부피를 젖히고

담요 속에서 들췄던 건

작은 세례명

참 이상도 하지

밥을 열자 뚜껑 안쪽에 숨겨진 눈물,

검은 오지의 깡마른 아이 눈망울에서

꼿꼿하던 아버지의 고개 숙인 음표들이

디지털 밥솥의 경적을 울리며

내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눈부신 아버지 눈물이 보이는 것은,

 

 

2022.11.14.

2023년 6월-모던포엠 이달의 작가

2024년 한국창작문학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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