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단서/ 김영미
바람이 분다
몇 줌의 잎들이 내 의식의 지퍼를 열고서
뭉텅뭉텅 빠져나오는 듯한 오후 저쪽에서
바람이 분다
창은 이럴 때 늘 함구를 택한다
커피는 내가 새벽의 꿈들을 머릿속에서
다 몰아낸 뒤에나 끓을 것이다
기다림이 왜 오랫동안 거실에서
풍토병처럼 동거하는지
커피를 끓이다 보면 알게된다
가을의 단서,
나는 창밖 풍경들이 나무에게 금지될 때마다
바빠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스마트폰의 숫자들과
오후의 잠을 줄이고
컴퓨터와 블랙홀을 서핑하다가
몇 개의 스팸들과 싸우곤
다시 거실로 나온다
내 의식의 떨켜를 간질이는 커피향은
붉은 나무 모퉁이를 돌아서
주소불명의 엽서를 빈 잔에 풀어 놓는다
2022.10.09
2023년 6월-모던포엠 이달의 작가,2024시와수상문학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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