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가을단서

언어의 조각사 2022. 10. 26. 23:41

가을단서/ 김영미

 

바람이 분다

몇 줌의 잎들이 내 의식의 지퍼를 열고서

뭉텅뭉텅 빠져나오는 듯한 오후 저쪽에서

바람이 분다

창은 이럴 때 늘 함구를 택한다

커피는 내가 새벽의 꿈들을 머릿속에서

다 몰아낸 뒤에나 끓을 것이다

기다림이 왜 오랫동안 거실에서

풍토병처럼 동거하는지

커피를 끓이다 보면 알게된다

가을의 단서,

나는 창밖 풍경들이 나무에게 금지될 때마다

바빠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스마트폰의 숫자들과

오후의 잠을 줄이고

컴퓨터와 블랙홀을 서핑하다가

몇 개의 스팸들과 싸우곤

다시 거실로 나온다

내 의식의 떨켜를 간질이는 커피향은

붉은 나무 모퉁이를 돌아서

주소불명의 엽서를 빈 잔에 풀어 놓는다

 

2022.10.09
2023년 6월-모던포엠 이달의 작가,2024시와수상문학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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