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약국 / 배정원
세번째 약국엔 새장이 있었다
햇살은 넉넉하였고 한 쌍의
카나리아는 하얀 진통제를 쪼고 있었다
구리반지보다 더 가느다란 손이
진열장을 열면 아스피린들, 눈처럼 쏟아져
아직 녹지 않은 눈은 눈물겨웠다
병든 과일나무 분재의 웃음이
석유스토브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던, 겨울
아침 저물 무렵
시장골목이 끝나는 곳에
세번째 약국이 있었고 그곳엔
소복을 걸친 약사와, 정적과, 불치의 病이 있었다
캡술에 든 흰가루를
드링크제의 목을 비틀어 마셔도
해독되지 않는 날들은
식도의 어디쯤에서 분해되는가
유리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햇살은 또 그렇게
저희끼리 몰려다니며 깔깔대고 있었다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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