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림 시인 / 산벚나무를 묻지마라
늙은 산벚나무가 온 산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가부좌 틀고 앉은 벙어리부처를 먹이고, 벌떼 같은 하늘과 구름을 먹이고, 떼쟁이 햇살과 바람과새를 먹이고, 수시로 엿듣는 여우비를 먹이고, 툇마루에 눌러앉은 한 톨의 과거와 할미보살을 먹이고, 두리번두리번 못 다 익은 열매들의 슬픔을 먹이고, 애벌레의 낮잠 끝에 서성이는 노랑나비를 먹이고, 먹이고…먹이고,
흘러 넘친 단물이 절 밖을 풀어먹이고 있었다 젖무덤 열어젖힌 산벚나무, 무덤 속에 든 어미가 무덤 밖에 서 있다 퉁퉁퉁 불어터진 시간이 아가아가 아가를 숨가쁘게 불러댄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
코 닫고 눈 닫고 귀 걸어 잠그고
문둥이 속으로 들어간 절 한 채
어두워지고 있으리라
임경림 시인
1961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출처] 임경림 시인 / 산벚나무를 묻지마라 ㅡ 봄 숲 새소리|작성자 저녁 하늘
'그룹명 > 좋은 글 훔쳐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이가 있던 자리 / 이윤훈 (0) | 2022.09.19 |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0) | 2022.04.28 |
물 같은 사랑/ 최승규 (0) | 2022.04.01 |
그리운 약국 / 배정원 (0) | 2022.02.28 |
해묵음에 대하여 / 박경원 (0) | 2022.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