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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를 묻지마라/ 임경림

언어의 조각사 2022. 4. 14. 23:33

임경림 시인 / 산벚나무를 묻지마라

늙은 산벚나무가 온 산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가부좌 틀고 앉은 벙어리부처를 먹이고, 벌떼 같은 하늘과 구름을 먹이고, 떼쟁이 햇살과 바람과새를 먹이고, 수시로 엿듣는 여우비를 먹이고, 툇마루에 눌러앉은 한 톨의 과거와 할미보살을 먹이고, 두리번두리번 못 다 익은 열매들의 슬픔을 먹이고, 애벌레의 낮잠 끝에 서성이는 노랑나비를 먹이고, 먹이고먹이고,

 

흘러 넘친 단물이 절 밖을 풀어먹이고 있었다 젖무덤 열어젖힌 산벚나무, 무덤 속에 든 어미가 무덤 밖에 서 있다 퉁퉁퉁 불어터진 시간이 아가아가 아가를 숨가쁘게 불러댄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

코 닫고 눈 닫고 귀 걸어 잠그고

문둥이 속으로 들어간 절 한 채

어두워지고 있으리라

​​

임경림 시인

1961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2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2002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출처] 임경림 시인 / 산벚나무를 묻지마라 봄 숲 새소리|작성자 저녁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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