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나무.2

언어의 조각사 2007. 11. 15. 16:23
 

나무.2

                           김영미

 

뿌연 하늘이 내려앉은 날이면

관절마다 토도독 불거진 촉수들이

봄비 여울로

화르르 쏟아질 것 같은데

말 많은 세상에서 침묵으로 서있구나

해가 수정 빛으로 쏟아지거나

달빛이 가지 끝에 앉아

눈곱을 떨구고 간밤에도

그렇게 서있는 줄 알았는데

가지 끝에 맺힌 칼날 빛 서리에도

잎을 태우려는 용광로 빛 햇살에도

두꺼운 껍질 속 혈관에는

뿌리에서 가시랭이까지 솟구치는

소리 없는 율동

긴 침묵 끝에 던진 화두는

꽃과 

열매였습니다.

     

2003.02.21

-시작메모-

어떤 이가 나를 황당한 오해의 물결 속으로 몰아 간 적이 있었다

나무의 절규가 꽃과 열매로 빛나듯이 나는 진실이란 힘의 원천을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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