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못
김영미
서실의 못은 어떤 무게로 박혀있을까
어쩌면 표구 속 글자의 무게를 견디느라
노역을 치른다는 생각에
더는 가닿을 수 없는 형주를 맴돌다
먹물 든 행태를 태운다
못 박힌 경전을 추적한 적 있다
그때마다 거리 저쪽 서점들을 빠져나와
불면으로 밤을 보내거나 방황하기도 했지만
골고다로 간 부활의 길을 상상하며
남루한 삶 한쪽 벽에 갇힌 촛불은
제 몸을 허문다
삶 속에 켜켜이 쌓인 상흔이
고단한 육신에 박혀 할 말이 많은 듯
필사적으로 벽을 붙들고 있다
태생이 뾰족하고 무모하다 보니
가끔 구부려질 때도 있지만
본분은 구부리지 않는다
늙은 거리의 악사 바이올린 소리
내 영혼을 못질하며 서럽게 박힌다
그가 벗어놓은 모자 속 은전들이
햇살을 퉁기며 비늘을 드러낸 오후
또 다른 무용담을 망치가 휘두르면
강팍한 벽과 싸우지 않고
나무의 숨결, 나이테의 사생활까지
그대로 기억하는 못
가끔은 옹이를 잘못 밟고
며칠이고 절룩이다가도
나사렛의 못은 나를 비추는 빛이 된다
[作詩메모]
- 푸른 희망의 심시를 돋우며
가슴에 못이 박힌 사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존재의 폐부 깊숙이 못을 박았다면
그 사연의 뭉치들은 감히 망치라고 말해야 하겠지요.
내 가슴의 못을 생각하다가 문득 골고다의 못이 침묵으로 박혀 있는 이유를 봅니다.
어린 시절, 교정 한편의 풍향계를 찾아 바람의 행방을 올려다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풍향계 속의 바람은 하늘에 못을 박듯 창을 든 병정 같았지만,
고요의 위치를 잘도 가르쳐 주었지요. 그것이 내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나무마다 푸른 못이 봄의 심지를 북돋우며 희망을 밝힙니다.
내일부터는 내일이 되지 못한 내일들과 푸른 눈싸움을 즐겨야겠습니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골프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7회] 성스러운 못
'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6회] 737-800 (0) | 2025.01.11 |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5회] 차도르 (1) | 2025.01.08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4회] 십구공탄의 추억 (0) | 2025.01.08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2회] 곶감 (7) | 2024.12.07 |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1회] 진눈깨비 (2) | 2024.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