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7회] 성스러운 못

언어의 조각사 2025. 1. 17. 10:01

성스러운 못

                     김영미

 

서실의 못은 어떤 무게로 박혀있을까
어쩌면 표구 속 글자의 무게를 견디느라
노역을 치른다는 생각에

더는 가닿을 수 없는 형주를 맴돌다
먹물 든 행태를 태운다 

  

못 박힌 경전을 추적한 적 있다
그때마다 거리 저쪽 서점들을 빠져나와
불면으로 밤을 보내거나 방황하기도 했지만
골고다로 간 부활의 길을 상상하며
남루한 삶 한쪽 벽에 갇힌 촛불은
제 몸을 허문다

 

삶 속에 켜켜이 쌓인 상흔이
고단한 육신에 박혀 할 말이 많은 듯
필사적으로 벽을 붙들고 있다
태생이 뾰족하고 무모하다 보니
가끔 구부려질 때도 있지만
본분은 구부리지 않는다

 

늙은 거리의 악사 바이올린 소리
내 영혼을 못질하며 서럽게 박힌다
그가 벗어놓은 모자 속 은전들이
햇살을 퉁기며 비늘을 드러낸 오후 

                                     

또 다른 무용담을 망치가 휘두르면
강팍한 벽과 싸우지 않고
나무의 숨결, 나이테의 사생활까지
그대로 기억하는 못


가끔은 옹이를 잘못 밟고
며칠이고 절룩이다가도
나사렛의 못은 나를 비추는 빛이 된다

 

 

[作詩메모]

- 푸른 희망의 심시를 돋우며

가슴에 못이 박힌 사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존재의 폐부 깊숙이 못을 박았다면

그 사연의 뭉치들은 감히 망치라고 말해야 하겠지요.

내 가슴의 못을 생각하다가 문득 골고다의 못이 침묵으로 박혀 있는 이유를 봅니다.

 

어린 시절, 교정 한편의 풍향계를 찾아 바람의 행방을 올려다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풍향계 속의 바람은 하늘에 못을 박듯 창을 든 병정 같았지만,

고요의 위치를 잘도 가르쳐 주었지요. 그것이 내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나무마다 푸른 못이 봄의 심지를 북돋우며 희망을 밝힙니다.

내일부터는 내일이 되지 못한 내일들과 푸른 눈싸움을 즐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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