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4회] 십구공탄의 추억

언어의 조각사 2025. 1. 8. 16:48

십구공탄의 추억

                          김영미

 

세파골 냇가에서 빨래하던 날
손이며 얼굴이며
눈이 맞은 부위마다 통증이 희다

 

산비탈을 오르내리던 햇살을 가로질러

장작이 있던 뒤란에는
월동의 부피로 연탄이 쌓이고

 

십구공탄의 숨통을 드나들던 따듯한 가난과
시우는 온기를 부여잡고 지새우던 밤

그 가물거리던 내일을 향한 횃불은 이어져
가파른 골목에는
연탄을 품고 오르는 아이 손잡고
햇볕을 퍼 나르는 땀내 그득한 숨소리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열아홉 순백의 마음에 수묵화를 그리던 시절
벽에 붙어있던 단물 빠진 껌처럼
가슴 속 매캐한 검은 안개 게우며
동치미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기억

 

연통을 통해 퍼지던 흰 덕담이 그리운지
눈은 밤새 쌓이고
옆집 노인의 쿵쿵거리는 기침에
짐짓 길을 잃을까 봐              
조근조근 타들어 가던 불길의 높낮이     

 

벌겋게 타오르는 연탄을 건네주던
이웃과 이웃의 가슴으로
가난하여도 타오르는 불길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다닌다

 

[作詩메모]

- 연탄재의 핼쓱한 무게는 사랑이다


군불을 지피던 아궁이를 메꾸고 입식 부엌으로 바꾸면서 연탄 보일러를 들여놓았던 어릴 적 고향 집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신문명에 빠르게 적응하던 분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그때도 배터리를 설치해 형광등과 텔레비전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부모님 품을 떠나 홀로 자취를 하면서야 연탄불 관리의 번거로움을 알게 되었다. 마냥 편리한 줄로만 알았던 연탄불은 귀가 해서 보면 꺼져 있기 일쑤였고, 번개탄을 이용해서 불을 피워도 불이 잘 붙지 않아 매캐한 연기를 마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옆방 자취생이나 주인집의 도움으로 불을 피우곤 했는데, 그렇게 한바탕 사건을 치른 후 벌겋게 타오르던 연탄불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따듯하다.

패션 회사에 근무하면서 교복 담당으로 부천 대리점에 파견 나갔을 때였다. 방학을 이용해 놀러 온 여동생과 함께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누군가가 호통치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 연탄불을 확인하는 순간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가스 중독임을 인지하고 동생을 살려야 겠다고는 생각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없었다. 호통치며 살려준 건 나의 수호신이라는 생각과 온 몸의 멍들이 동생을 살렸다고 증명할 뿐...  

연탄의 기억은 부모님의 희생, 이웃과 나누는 사랑으로 내 기억을 훈훈하게 해 준다.

연탄 집게에 올려지던 연탄재의 핼쓱한 무게는
자신을 비우며 가족과 이웃을 향한 나눔의 향기가 그득히 밴 묵직함, 바로 그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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