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김영미
가을이 왔다
마르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는 바람의 날들
허공이 내 안의 문서가 되는 계절이다
감을 벗긴다
여름의 순수를 벗기고
성장기의 방과 후 시간을 벗긴다
평생 분칠 한번 두둑하지 못한 어머니는
내 책상보다 낡아지기 시작했고
이 가을에 감들은 울컥한 눈물로 다가온다
따듯한 계절을 포기한 어머니
까마득하게 사라진 표지를 본다
링거 속의 사연만으로는 밝힐 수 없는
지상의 아름다운 고뇌와 바람을 안고
태양의 써레질을 견디며 곶감이 되는 동안
미라처럼 말라가던 어머니
곶감의 분칠은 가을의 마지막 터치
수의를 입고서야 뽀얗게 분칠하고
환한 미소 머금고 간 어머니는
내 감성을 온기로 어우른다
어.머.니~
불러만 보아도 내 가슴은
말캉말캉 해맑게 따습다
[作詩메모]
청도에 사는 지인이 보내 준 감 한 박스가 도착했다.
그 감을 보자 떫은 티를 벗지 못한 내 감성을 말간 감의 내면을 밝히듯 성장시킨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한창 멋 부리던 시절, 농번기에 양산을 쓰고 집에 갔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이었다.
어머니가 곱게 차려 입고 얼굴에 화장하는 날은 남편과 자식들 체면을 생각함이었다.
절약과 근검으로 사신 어머니는 자식들이 사준 화장품과 좋은 옷이 있어도 장소를 가려가며 입으셨다.
특히 모피 옷은 거의 걸치지 않고 옷장만 지키고 있다가 내게 남기고 가셨다.
겉치레에 치중하는 나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거라고.
진정한 멋은 꾸밈없는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거라고 늘 말씀하시던 , 어머니와의 기억은
뽀얗게 분칠한 곶감처럼 말캉거리며 나를 따습게 한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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