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1회] 진눈깨비

언어의 조각사 2024. 11. 29. 23:24

진눈깨비/ 김영미

 

블랙 앤 레드 창 밖
재즈 선율로 진눈깨비는 내린다
그대의 사랑도 진눈깨비를 닮았었지
저녁이 가까울수록 흰 이를 드러내던 표정이며
가끔은 엇박자로 바뀌던 그대의 너스레


사랑의 골목을 잃고서
끝내 하지 못한 고백을 후회하던
그 틈바구니에서 진눈깨비 내리던

프리지어는 한때
노란 향기만으로도 골목을 들썩이었다

 

조금 전 어깨 위 투박한 고백을 툭툭 털고서야
사랑을 얻은 누군가의 대화를 물끄러미 넘겨보던
그대는 먼 바다의 진눈깨비처럼 나부낀다

 

2월은 지난날 카페에서 바라보던
블랙 앤 레드 빛 너머 진눈깨비를 기억한다
지퍼는 이가 망가진 후부터 추억을 책임진다
불안이란 낡은 장롱 속 추억을 책임져야 하는
나프탈렌 냄새이기 때문이다

 

오늘, 세상의 모든 진눈깨비는
프리지어를 몰고 오고 있단 말인가

기다리지 않아도 2월은 또 올 것이다
잘 발효된 사랑이 지퍼 속을 뛰어나올 때
블랙 앤 레드의 재즈 선율로 흐를 것이다

 

[시작 메모]

- 꽃의 계절을 꿈 꾸는 겨울의 순례자-


진눈깨비는 눈의 부족이면서 비의 첩자다. 공중의 구름 중 가장 잘 발효된 것이 진눈깨비가 아닐까.

비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왔고, 눈으로 되돌아가기엔 절벽 저쪽의 사연이 너무 까마득하다.

이럴 때 나는 생각한다.

진눈깨비야말로 공중의 생애를 가장 사랑하고도 스스로 구름의 이단이 되어

꽃의 계절을 꿈꾸는 아름다운 겨울의 순례자라고.

 

허공에서 발효와 부패를 수 없이 갈아입었을 고뇌의 흔적,

나는 프리지어향이 머물던 창 너머로 재즈의 선율을 밟으며,

표백 되지 못한 2월의 눈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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