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시인의 참 시詩 방앗간

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39회] 어부지리

언어의 조각사 2024. 11. 18. 21:04

어부지리(漁夫之利)/ 김영미

 

태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것이다. TV에서 말하는 아나운서의 늘씬한 다리 밑으로 
‘여야협상 결렬’이라는 자막이 스쳐간다

 

오전을 비켜나간 비 예보가 오후가 되어서야 내린다
구름이 제각각 다른 몸짓을 주장했기 때문일까
오후로 외출하는 우산은 오전의 착각을 장식물처럼 즐긴다
때론 골목 끝에 이르러 자신의 둥근 질서를 버리고
붉은 벽돌의 또 다른 날들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예감은 조금씩 습기를 덜어내며 하루치 변명을 줄여간다

 

비가 약속을 어겼다는 건
노아의 계절이 방주를 짓지 못했다는 것일까
빗나간 약속은 우산을 잊고선 말라붙지 못한다
맞잡으면 눈물의 곡절도 낭만이 되는 길을 찾아내거나
그 뒤편의 질펀한 이별을 치르기 전까지는
갈림길 방황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TV는 바다 저쪽의 도요새와 무명조개의 치열한 생존 전투를 보여주고
어부들은 호시탐탐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비바람에 굽은 등에서 먹물 먹은 구름이 쏟아지려 하지만
어깨를 맞대고 서로를 끌어안을 둥근 날을 바라보며
한숨을 털어내고 꾸우욱 꾹 눌러 접는다

 

[시작메모]
당쟁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화합과 결속의 시너지를 발휘하며 발전해 온 민족이다. 지금도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지붕 아래는 시끌벅적 논쟁으로 뜨겁다.

국회의사당 건물 중앙의 돔은 다양한 국민 의견들이 완만하게 합의된다는 의미다. 기둥을 이루는 청색은 바른 신념의 정치를 펼치는 국회의 이미지를 상징하며, 돔을 이루는 색 중 왼쪽의 밝은 청색은 지성과 희망, 오른쪽의 녹색은 평화와 더불어 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 친근함을 상징한다는데 요즘은 그 의미가 무색하다.

비 갠 후 무지개, 말끔한 증거 속에서 햇살들의 내심을 헤아려 보는 일도 삶의 묘미인 듯하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처마 밑 풍경소리처럼 인연의 무게와 헤어지는 일이겠지만 공명 속의 진리는 부메랑이 되어 아름다운 계절로 되돌아왔으면...

하늘은 낮아지고 바람의 언어들이 내 안 갈증의 행방을 묻다가 새소리에 지워진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서로 결속을 다지며 마음을 나누면 겨울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에도 따듯한 위로가 될텐데... 마음 더불어 사는 세상이 열리길 기도해 본다.

곧 겨우내 쟁여둘 김장을 하느라 이웃끼리 모여 힘을 합치는 광경이 펼쳐지겠지요.
햇살과 비 그리고 땀방울이 들어찬 배추에 온 가족의 마음과 정성을 버무려 발효시키는 그 칼칼하고 시큼, 시원한 맛의 문화를 소환해 봅니다.
여의도의 푸른 돔 안에서도 곧잘 어우러진 발효의 미담이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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