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대하여
고재종
어쩌려고 마음이 경각에 닿을 듯
간절해지는 황혼 속
그대는 기어코 사랑을 질문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먼 데 둔다.
붉새가 점차 밀감빛으로 묽어가는
이런 아득함 속에서
세상은 다 말해질 수 없는 것,
나는 다만 방금까지 앉아 울던 박새
떠난 가지가 바르르 떨리는 것하며
이제야 텃밭에서 우두둑 펴는
앞집 할머니의 새우등을 차마 견딜 뿐.
점점 밝고 어두운 것이 서로 섞이는
이런 박명의 순순함 속에선
뒷산 능선이 그 뒤의 능선으로
어둑어둑 저미어 안기는 것도 좋고
저만치 아기를 업고 오는 베트남 여자가
함지박 위에 샛별을 인 것도 좀 보려니,
그대는 질문의 애절함을 지우지도
안 지우지도 않은 채로 이제 그대이고,
나는 들려오는 저녁 범종소리나
어처구니 정자나무가 되는 것도 없이
나는 시간이건 사랑이건
죽지도 않은 채 흠향한다.
그렇지 않은가, 삶은 아름다운가
이런 저녁, 별들의 성좌가 거기 있을 뿐
먼 데도 시방도 없이 세계의 밤이다.
《유심》 2014. 1월호
- 고재종 시인은 1984년《실천문학》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쪽빛 문장》등과 육필시선집《방죽가에서 느릿느릿》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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