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木器에 담긴 밥을,/유홍준

언어의 조각사 2014. 5. 12. 13:14

    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 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발견》2013. 겨울호

           2014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그룹명 > 좋은 글 훔쳐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견고한 기도 /김주경  (0) 2014.08.26
오월 / 고창환  (0) 2014.05.28
황혼에 대하여/고재종  (0) 2014.01.27
내게 닿은 시  (0) 2013.10.19
사라진 내가 아프다/김일연  (0) 201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