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 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발견》2013. 겨울호
2014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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