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학의 향기(공부방)

폐차장 근처 - 박남희 -

언어의 조각사 2010. 6. 30. 00:58

 폐차장 근처                    -  박남희 - 

 


 

①이 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②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 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었던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③해바라기

꿈같은 ④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⑤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 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⑥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텍스트의 이해>

 

①자동차 바퀴 따위를 말한다.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속도를 지향하는 기계부품인 ‘바퀴’는 근대 문명을 상징한다.

 

②여기서 이름과 광택은 나를 속박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름이 있으되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광택이 있으되 그것은 내면이 얼비친 것이 아니라는 발상이다. 즉 이름과 광택은 존재의 본질을 가리우는 것을 말한다.

 

③해바라기는 태양을 지향하는 꽃이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지하에 흐르는 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④길어 올리는 것은 물이지 불일 수 없다. 해바라기라는 통로를 거치면서 물이 불로 질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⑤죽음을 사멸이 아닌 재생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바퀴의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재생을 기약하는 변신이 된다.

 

⑥‘씨앗’은 재생의 상징성을 갖는다. 식물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감상>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시에서는 폐차장 근처의 풍경을 보고 시상을 얻어서 쓴 것이다. 1-4행은 정신없이 달리던 바퀴가 속도, 이름, 광택을 잃었다는 내용이고, 5-10행은 누워 있는 바퀴가 새로운 차원의 꿈을 꾼다는 내용이다. 11-14행은 바퀴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내용이고, 15-20행은 바퀴가 도로에서의 ‘소음과 질주’ 대신에 풀벌레 울음이라는 자연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21-25행은 바퀴가 폐차되는 순간에 ‘또 다른 삶을 기약한다’는 것이고, 26-30행은 바퀴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을 버릴 때 얻어지는 것일 듯하다. 바퀴가 질주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폐차 즉 생의 종점에 와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폐차장 근처의 흙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비움’이 있기에 비로소 어떤 무게도 짐 지우지 않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또 풀들과 풀벌레들에게 안온한 집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비로소 생의 종점인 폐차장에서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씨앗’ 즉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징 :  ①상징적 소재를 통해 문명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있다.

         ②식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의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

 

 

주제 : 폐차장의 바퀴를 통해 본 현대 문명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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