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노가리 앞에서

언어의 조각사 2009. 5. 18. 16:08

 노가리앞에서                                                                                            

                          心田김영미     

 

노가리에서 염전 바닥을 스치던 바람 냄새가 난다

달빛을 등지고 들어서는 지아비 몸에서 맡던 그 냄새다

 

탄력 있던 육체는

욕망과 생존의 습기마저 포획당한 채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참선 중이다

 

구멍 난 삶으로 오염된 상처를 닦아내듯

애증으로 차오르는 가슴에 소주를 부어 넣는다

 

채우지 못한 내 안의 갈증으로

열기 오른 입술이 접시를 훑는 사이

몸통에 달라붙어 있던 지느러미가 날개를 펼친다

 

거세당한 꿈으로 가슴은 염전이 되는 동안

어린 명태들이 술잔을 튀어 오르며 파도를 가른다

짠 내와 갯내도 일렁인다

 

삼킬 수 없는 바닷물처럼 입전만 맴도는 파도 소리 때문에

난 결국 노가리를 씹지 못했고

마른 몸통을 툭툭 분지르는 손끝을 바라보며 깡술을 마신다

간도 쓸개도 버려야 했을 지아비 빈 가슴을 바라보면서 

 

치열했던 삶 가벼이 비우고 바다를 닮아가는 노가리 앞에서

치기 어린 도피를 꿈꾸는 내 독설은 서서히 말라가고

비우지 못한 욕망의 편린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창자 속까지 수분을 비워낸 마른 눈에서 난 왜 자꾸만 바다가 보이는 걸까

알콜로 마비된 가슴의 상처는 왜 자꾸만 몸통을 불리며 파도소리를 내는 걸까

 

09.05.06

 


치열히 살다 모두를 비워내고 의연히 누워 바다를 보여주는 널 두고

누가 노가리 깐다고 하였던가?

취기어린 도피를 꿈꾸며 쏟아내는 독설과 허풍으로

종족번식의 치열한 본능을 이해하고는 있는 걸까?

오늘도 내안의 바다는 갈증으로 출렁인다.

09.계간문예 12월호

09.광주문학 12호

 

아래 음악은 최종혁작곡가님이 편곡해주셨습니다.

 

첨부파일 b16.mp3

음음악: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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