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꿈길 젖던 날

언어의 조각사 2006. 4. 11. 13:50

꿈길 젖던 날 
                                      김영미

종이함에 갇힌 해묵은 감자가
*볕뉘를 따라가며 길을 뚫는다 
벼랑끝에 솟구치는 
생을 향한 자줏빛 반란

어둠을 살라먹고
모반을 꿈꾸는 수선한 기척에
지난밤 꿈길이 젖어 있구나

내 어머니 쭈글한 뱃가죽은 
자투리 삶마저 놓으려 하는데
넌 어둠에 잠겨서도
하늘빛 눈을 뜨고 있구나

작은 씨눈으로
어머니 하늘을 파먹은 나
오늘 밤 별은 눈뜨지 못했다.

2006.04.06


*볕뉘-작은 틈으로 비치는 햇볕,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만 햇볕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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