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아버지를 추모하며

언어의 조각사 2007. 5. 23. 12:15
 

 아버지를 추모하며   

                                                  김영미                      

                       

청년 20년, 결혼 10년만에야

강보 속 핏줄 안고 어화둥둥 하시더니

소금 꽃 질 새 없어

헤진 저고리 흙투벙이 잠뱅이로

곡괭이 삽자루에 혼을 실어

채굴막장 걸어온 44년 세월

폐부에 스며든 먼지가 돌이 된 세월로

뿔뿔이 제 갈길 가며

노후는 신선처럼 영화롭길 바라는

육 남매의 기도는 허공에 뜨고

진폐증 멍에를 짊어진 당신은  

조여 오는 숨 고통은 아랑곳 않고

자식들 가냐른 아픔을

더 큰 고통으로 여기는 사랑

 

아버지

가족 걱정일랑 훌훌 털어 버리고

*煉獄門 가뿐히 여시어

고단했던 짧은 생

보다 큰 상급으로 보상 받으소서

영원한 생명에의 믿음이 있기에

이 여식

서러운 마음은 잊겠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당신은 나의 영원한 버팀목 사랑입니다.

 

1998.6월에 장녀 영미 올립니다.

**煉獄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죄를 씻기 위한 중간 문

 (98년 6월 10일 이승의 연을 놓으신 아버지를 추모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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