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조금씩 무료해지기 시작하는
오월에는 그대여, 카페 「칼리」로 가 보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세월리 안쪽에 숨어 있는
항해선 모양의 카페 「칼리」에 가 보면 안다
산다는 것이 때로 가슴계곡을 후비지만
물살은 그대의 가슴을 눙치고 흘러간다는 것을
불심 지극한 금어(金魚)가 그린 듯
보살 모습의 세밀화들이 벽을 장엄하면
카페 안에서는 야생화들이 소리 없이 자라고,
넉넉한 주인은 아마도 새싹비빔밥을 들고 오며
그대의 마음을 안다는 듯 빙긋이 웃으리라
새싹비빔밥 위에는 수줍어 살포시 고개 숙인
한련화 한 송이가 얹혀져 있으리라
삶이 자꾸만 무료해지기 시작하거든
그대여, 카페 「칼리」로 가 보라
가서 무심히 생을 견디고 있는 야생화들을 보라
그리고 수줍은 첫사랑 입술 같은
한 송이 한련화라도 만나 보라
베꼬니아 잎이나 라일락 잎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새콤 쌉싸름한 그 꽃잎의 맛은 어쩌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의 맛이라고나 할까?
이제는 사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빛 자전거바퀴처럼 아득히 멀어져간 그 소녀,
어쩌면 그 소녀도 동그란 선창을 내걸고
수평선 바라보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을까?
아, 일요일 아침에 카페 「칼리」로 가서
그대와 나 한 배를 타고 함께 흘러가 보자
삶이란 언제나 가슴을 콱 막히게 하지만
때론 수평선처럼 뚫릴 때도 있음을 알게 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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