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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막차를 탄 적 있었다

언어의 조각사 2006. 11. 16. 17:49
달빛 대문 삐걱거리는
해방촌 산동네 열고 들어가
관 같은 방에
얼어버린 몸 눕히겠다며
막차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28-1번 버스는 오지 않고
바람 찬 늦가을 어둠 같은 내게
잠깐 정차하지도 않은 채
낙엽은 다음 역으로 달려가버렸다
자정이 지나도 소식 없는
막차는 문득 아버지를 닮았다
한 잔 술 걸치고
밤늦게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막차를 탄 적이 있었다
도굴당한 능처럼
술병이 하나 굴러다니고
창문은 반쯤 열려 덜커덩거렸다
잠들어도 깨우지 않는 막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돌아갈 내 무덤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며
여명의 새벽을 저주한 적이 있었다
동이 터도 오지 않는
막차 같은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꺼져가는 별을 보고 있는 어머니
오늘도 눈발이 세차게 휘날려
빗장을 걸지 못하고
흔들리는 대문을 여태 잡고 있었다
출처 : 구석기와 함께 시(詩)를
글쓴이 : 구석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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