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좋은 글 훔쳐보기

초우草雨

언어의 조각사 2007. 4. 27. 18:19

초우草雨  /  한기홍

 

저민 가슴 휘돌아 안개비가 젖어듭니다
이 사랑도 저 사랑도 풀잎 되어 울컥 이는데,
백리 밖 그 집 뜨락 섬돌 빛에도
노오란 비창悲愴이 번져요
그리운 모든 것들은 늘 갈망어린 침을 흘립니다
풀잎들은 언제나 만만해서 나 또한 억세게 부여잡고
몸 던져 구르기도 했지만,
아 아 으깨어져 잠겨간 그 아픈 소리들 순한 절규들이
창천에 걸리거나 어두운 덤불 속으로 스러져 갈 때
나는 비로소 알았어요, 하 많은 세월 힘겹게 지고 온
내 사랑도 그대 사랑도 여린 사슴 눈알에 맺힌
가녀린 먼 빛 슬픔이었음을
그대여 오늘처럼 풀잎에 영롱한 눈물 구를 땐
이제까지 못 가졌던 사랑, 너무 아려서 멍든 사랑
모두 꺼내들어 멍울진 풀잎에 펼쳐보아요
모든 게 흐느낌을 멈출 때,
우린 환하게 초우를 맞을 거예요
그래요 서녘 하늘 파랗게 쪼개질 무렵이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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