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5

기울어진 시월의 밤을 추모하며

데카르트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가까이하면 그 모서리의 모난 곳이 드러난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위선이나 위험의 징조를 파악해야 할 때마다 먼 곳의 관점을 빌리는 듯도 합니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위험을 예측하거나 확인하는 일을 진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어느 낡고 습기 찬 계단을 내려가다가 예상치 못한 계절을 만난 듯 2022년 10월의 끄트머리에서의 밤은 그렇게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축제, 젊은이들과의 이별로 미끄러진 핼로윈데이가 되었습니다. 아직 이육사의 발자취를 찾던 안동으로의 문학기행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시월의 끝날이 와닿지 않던 차에 안타까운 소식으로 가슴이 먹먹합니다. 고령화 사회를 짊어진 이들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그룹명/사랑방 2022.10.31

가을단서

가을단서/ 김영미 바람이 분다 몇 줌의 잎들이 내 의식의 지퍼를 열고서 뭉텅뭉텅 빠져나오는 듯한 오후 저쪽에서 바람이 분다 창은 이럴 때 늘 함구를 택한다 커피는 내가 새벽의 꿈들을 머릿속에서 다 몰아낸 뒤에나 끓을 것이다 기다림이 왜 오랫동안 거실에서 풍토병처럼 동거하는지 커피를 끓이다 보면 알게된다 가을의 단서, 나는 창밖 풍경들이 나무에게 금지될 때마다 바빠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스마트폰의 숫자들과 오후의 잠을 줄이고 컴퓨터와 블랙홀을 서핑하다가 몇 개의 스팸들과 싸우곤 다시 거실로 나온다 내 의식의 떨켜를 간질이는 커피향은 붉은 나무 모퉁이를 돌아서 주소불명의 엽서를 빈 잔에 풀어 놓는다 2022.10.09 2023년 6월-모던포엠 이달의 작가,2024시와수상문학 동인지

시작노트 2022.10.26

밤하늘은 깨진 파일이다

밤하늘은 별들의 주유소다 ‘화기엄금’이라는 문구를 읽으며 신생의 별들은 또 먼 길을 주유한다. 몇 개의 성좌를 희미한 여행지로 지목하며 낡은 바코드를 찍는다. ... 밤하늘을 드라이브하는 일은 늘 모국어 속을 헤매는 위태로운 문장들 같습니다. 그 안엔 윤동주 시인님의 북간도와 고국의 어머니도 복사되고 있습니다. 밤하늘은 참 아름다운 지상의 형무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22년 11월2일의 밤하늘도 그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2022.겨울 순수문학

그룹명/사랑방 2022.10.19

허난설헌을 만나다

2022년 10월 15일 남한산서아트홀에서 창작오페라 ‘허난설헌’쇼케이스가 열렸다. 나는 딸의 시어머니를 초대해서 함께 관람할수 있어서 참 좋았다. 허봉과 초희, 허균은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다. 이들 가족의 생각은 시대의 이단(異端)일 수밖에 없는 유교가 근본이념인 조선에서 허초희(난설헌)는 여인으로 태어났으니, 엄격한 신분제도와 남녀의 차별 없이 평등하고 공정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한다는 것이 허망한 이상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는 탁월한 능력이 오히려 견디기 힘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상국(理想國)건설'이라는 유토피아가 꿈이 아닌 지금 이 시대에 우리와 공존할 수 있음은, 그분의 묘소가 있는 너른고을 광주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초연한 창작오페라 ‘허난설헌’쇼..

그룹명/사랑방 2022.10.17

축시

축시// 김영미 친구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걷던 호숫가와 그곳에서 수선화처럼 피어나던 이야기들 그럴 때 마다 친구에게 읊어주고 싶던 푸쉬킨의 시를 떠올리다가 그것보다 더 환한 친구의 웃음에 낯설어 지던 나, 친구여 기억하는가 우리가 선택한 그 걸음들 속에서 몇 줌의 대화만 갖고도 인생은 산책이 되고 아름드리나무에서 찾아낸 바이올린 하나가 되기도 하는 그 놀라운 시간들을... 그리하여 친구여 기억하는가 미래는 또다른 종류의 과거임에 우리가 걸어가는 저쪽에 더 많은 추억이 있을 것임을, 그곳에 백년의 사랑이 있었다니 그곳에 사철 마르지 않을 장미의 날들이 있었다니 친구여 기억해 주시라 우리가 늙고 더는 추억밖에 없는 날 그날에도 그 사랑 지상 최고의 산책이 되기를 최정임♡정진화 두분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2..

그룹명/사랑방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