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시간을 보다/김영미 얕은 산속을 산책하다가 문득 눈이 띈 버섯무리들, 현란함으로 보아 독버섯임에 분명하다 노란빛 혹은 형형의 색채 속에서 독성의 날들을 보낸다는 것 썩거나 죽은 나무의 그늘을 섭취하며 햇살의 반대편을 느린 생애로 버텼을, 내 안의 사랑도 그랬을 것이다 무례한 감정의 방문과 현란한 타협을 요구하는 젊음의 뒤안길에서 나의 사랑도 아픔들 상처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의 은신처를 빌려야 했으리라 사랑은 독이다 아니, 내 안의 느린 시간을 보호하기 위한 썩은 양분들이다 습기 찬 계절 속을 서성인다는 건 얼마나 찬란한 관습이던가 나는 그늘들의 시간을 지우고서 밤의 입구 이슬들이 몰려오는 또 다른 감촉들에게 귀를 적시기 시작한다 2022년 문학청춘 발표작 2022년 착각의 시학 사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