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풍경에서 깨어나다/김영미 고택에 든다 쇠락한 시간이 이곳저곳 널브러진 조그마한 안마당이 주춤 기억의 뒤로 숨고 뒤꼍으로 향하는 처마 옆 살구나무만이 노란 인사를 하는 곳 이제 다시는 청빈의 주소를 꿈꾸지 않으리라던 쓸쓸한 독백과 절구 속 봄날의 가난을 눈물로 빻던 곤궁한 푸념들이 되살아나고 어쩌면 이맘때는 아니었을까 내가 논두렁 너머로 곡선의 심부름을 하며 아버지의 막걸리에 취한 그날 오후와 풀잎처럼 지친 몸을 맞이하던 고택의 지조 방금 뒤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바람에도 단추 같은 열매를 몇 개 내줄 것 같은 늙은 감나무 풍경을 상상해 보는 일 고택은 그러나 고택을 꿈꾸지 않는다 낡은 풍경을 복사하지도 않으며 그렇다면 지금 고택이 꿈꾸는 건 정작 무엇일까 맨 처음 자신 속에 주소를 열었던 바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