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림 현상 / 김영미
첫눈이다
먼저 바깥 동정을 느낀 k는 블라인드를 열었고
곧 그칠까 긴장한다
첫눈은 언제나 이국의 소녀처럼
낮은 억양으로 쌓이다 간다
안개꽃이 되려다 커피 내음에 가려졌던
오래전 낡은 카페의 대화처럼 사라진다
첫눈이다, 나는 중얼거리곤
k가 자리를 비운 창가로 간다
그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난겨울에도 자신의 종적을 지우고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 돌아왔다
첫눈은 첫사랑의 기억처럼
현란한 착시를 일으킨다
방금 자리를 비운
k의 시간도 얼마 못 가서
블라인드 밖의 첫눈을
마지막 눈으로 바꿔 놓고는
곧 돌아올 것이다
처음은 마지막에서 기다리는
시작의 방점이 된다
요철을 넘어오듯
풍경 속의 과녁을 찾을 듯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계절의 숨소리
[作詩메모]
땡볕과 비바람을 견디며 한철 상처를 두려워 않던 초록의 혈맥들은 노랗거나 갈변된 붉은 풍경으로 겨울나무의 잎맥 사이로 지나치고 있다.
새움과 꽃이 피고 열매를 영글려 가던 소멸의 경계를 예상할 수 없듯이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계절의 환영에 지금은 눈꽃들이 운치를 더한다.
자라는 것만이 모든 존재 이유는 아니라고,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잎을 떨군 겨울나무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사랑의 상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미리 비정함을 마련하기도 한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이름이 상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생의 겨울과 작별하기 위해 상처를 멈추지 않았으며 가늠되지 않는 불면의 도수를 알아내기 위해 술병을 기울여 보기도 합니다.
지금, 누군가 그 사랑을 향해 서툰 날개로 뛰어들고 있지는 않을까...그런 사랑이 우리들의 겨울 속으로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를 2024년의 첫눈, 마지막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 골프타임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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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51회] 눈 내림 현상
눈 내림 현상첫눈이다먼저 바깥 동정을 느낀 k는 블라인드를 열었고곧 그칠까 긴장한다첫눈은 언제나 이국의 소녀처럼호기심을 부풀리다 알 수 없는낮은 억양으로 쌓이다 간다안개꽃이 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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