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김영미
이제 겨울은 기소중지 되었다
베란다 밖 소문들은
자코메티의 조형처럼 길어지기 시작했고
누군가 실려 온 이삿짐에는
별거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선인장 속 사막이 꽃이 되려면
두 마리의 낙타가 필요할지도 몰라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나의 신분이 미행당하는 듯한
그 짧은 느낌은 햇살들의 과소비일까
아니면 나만의 조급증일까
어쩌면 봄은 기소되지 못할지도 몰라
한때 나는
먼 시간 저쪽의 소문들을 찾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난 적 있었다
바다를 넘었고 선원사에 이르러
지문이 아니고는 읽어낼 수 없는
화석의 시간을 짐작하곤 했다
미래로 돌아가는 일은
시간의 풍랑을 만나는 일이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내 안의 권태를 버린다는 것
봄날은 더디 갈 것이다
마루 속 10년 전의 표정도
영정이라는 계절 속에서
가을을 더디 찾아낼 것이다
발을 헛디딜 때마다
제자리를 찾는 과거의 사연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시월의 행방을 햇살 너머로 넘겨본다
*작은 섬:강화도 선원사
문학청춘2022가을호, 2024미당문학, 시와수상문학동인지
메모-
미량의 햇살에 떠밀려 빙하의 계절이 열반에 들 즈음
소문의 지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집안 가득히 봄을 저장하던 난방 보일러를 끄고
햇살 속 푸른 씨앗의 길을 바라보며 창문을 연다.
그 순간 화르륵 내안에 들어서는 봄,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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