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동지

언어의 조각사 2020. 12. 21. 17:26

동지/ 김영미

 

12월이 죽었다

한 줌 햇살도 허락되지 않던 음지

눈뜨면 생생하게 되살아나

알 수 없는 소멸의 빛이 못질하는 야광의 날들

 

틈새로 새어들던 물세례와

물소리 걸러낸 어둠 속에서

투명한 음표들이 비상의 깃을 편다

 

꿈을 꾼다는 건 

증명할 수 없이 깊숙이 뻗은 

뿌리의 알리바이를 헛짚는 일

햇빛이 콩나물과 눈 맞춤 않고 즉사한 12,

밤이 낮보다 길다는 눈 내린 거리는

봄을 예열 중이다

 

너와의 어둠이 길게 드리운 날

한마디 위로 대신 봄 햇살 그득 담아

서럽도록 시원한 물 한 바가지 콩나물에 쏟아붓는다

 

어둠 속에선 음표들이 발돋움하며

숨 고르는 중

 

2020.12.21 동짓날

-21.착각의시학.봄호. 21,한국문인육필걸작선. 경기문학.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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