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장마

언어의 조각사 2020. 7. 1. 17:28

장마

                       김영미

 

 

유월은 새들의 소리조차 귀를 닫는다
구름의 골방에서 쓰다만 편지지에

뒤늦은 비의 추신을 적고 있거나
곰팡이 사생활을 들춰 보던

은신의 날들도

손전화 속 무음으로 잠근다

 

불시착한 구름이 수시로 드나들던

거리 저쪽의 우산들이
슬프리마치 숙연하게 조등을 밝힌다

 

호국영령 날개를 접은

지상의 날들이 침묵하는 사이

새들은 떠났고
밤새 서성이던 발자국을

빗소리에 새겼을 장마는

고단한 태양을 재우는

구름이 건네는 경전이다

 

유월의 길목에서 비의 추신을 들추자

침묵하던 문장들이 날개를 푸득인다

푸른 선혈로 고국 산야를 적시던

지면을 벗어난 그 날의 서곡처럼

분단의 벽을 타고 흐른다

 

골 깊은 이념의 봇물 터놓을 듯

하염없이

비는,

 

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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