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직선의 계보

언어의 조각사 2021. 2. 22. 16:09

집으로~~

직선의 계보 / 김영미

 

 

흐린 날짜들을 빠져나온 햇살은

몇 줄의 직선을 통과했을까

빨래는 곧게 말라가고 있다

흐린 날

엄마는 직선을 말리지 못해

눅눅한 오전을 끌어내 길게 널곤 했다

그런 날이며 부엌을 빠져나온 연기가

집안을 꼬불꼬불 휘돌아 나가고

곤궁한 근심들은

더 낮은 곳에서 꾸물대곤 했다

잘 마른 내 새벽잠은

하늘 입구에 꿈을 펼쳤지만

나무와 잎새들의 낡은 시간을 태우며

허공을 헤집어 연기를 말리던 엄마는

매캐한 눈물편지 연기에 실어 보냈으리라

낮은 담장을 넘어선 연기처럼

가벼워질수록 더욱 깊이 되살아나는

지난날의 속살들

어릴 적 굴뚝을 통과한 엄마의 편지는

딸과 딸의 딸 숨결로 이어져

사랑의 메아리 하늘에 닿고

팽팽하게 말라가는 아기 빨래들이

하늘과 땅에 직선의 편지를 쓴다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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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2일

오늘 손녀가 태어났습니다.
너무 기뻐서 자랑하고픈 맘으로
딸이 출산 준비를 하며 빨아놓은 아기 빨래를 보면서 쓴 글을
기념으로 올립니다.~^^

 

생후 20일 기념이래요..~^^

 

하품도 이쁜 다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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