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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언어의 조각사 2016. 11. 2. 10:17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복 효 근 -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 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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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용담꽃 꽃말에서 이 시를 탄생시켰다고 복효근 시인에게 들었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
                      - 복효근 -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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