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길 위에 서다

언어의 조각사 2013. 9. 4. 08:29

길 위에 서다

                            김영미

 

풀벌레가 웃을 때마다

나무와 풀들이 간지럼을 타며

계절 안쪽으로 길을 냅니다

 

거미줄은 아침마다 이슬을 까놓고

비상하는 것들의 숨소리를 조율합니다 

세상 씨알들 속 다지는

소리와 소리들의 하모니가 경전이 되는 

내가 가을을 정독합니다

 

은밀히 키를 불린 하늘이

성큼 자란 아들놈처럼 흐뭇하게

가슴 한켠으로 들어섭니다

 

길들의 뒷굽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들 행간을 더듬다 멈춘 나들이옷에는

단풍 빛이 출렁입니다 

가을은 가부좌의 고요를 흔드는 기폭제입니다

 

행자꾸러미가 부푼 가슴 여미며

굽 낮은 신발을 내밉니다

비울수록 야물게 빛나는 가을 밟는 소리가

책갈피 속으로 요뇨히 흐릅니다

 

2013.9.2 

광주문학.17 착각ㄱ의 시학.14 ㄹ한국창작17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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