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창.2

언어의 조각사 2010. 6. 7. 00:29

창.2

                                                           心田 김영미

 

한 사내가 떠나고
반지하 체온이 싸늘해지는 오전
지난밤
몇 잔 소주에 구겨진 청구서가 간유리를 더듬는다

두려움은 때로
밤의 한복판에서 마취되기 쉬운 것이어서
다만, 부주의한 마침표만이

먼저 떠난 알리바이를 지켜주고 있을 뿐

바닥을 드러낸 소주병 속 푸른 넋두리만이

그의 행방을 희미하게 더듬고
더는 잠기지 않을 공백
반지하의 가난에 팽팽해지는 정적
예감이란 하루 몫의 양식에 목을 매는 길흉과도 같은 것
그 구부러지지 않는 희망을 인력시장 언저리에서
그는 멀어지고 있거나
세상 저쪽에서 커다란 욕망을 실으려 했으리라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좌절이 내일로 향하는

한낮의 빛조차 여유롭지 않은 그 곳엔

오랜 날들의 박제된 사연들이 머물고 있다

형광등은 갈앉은 어둠의 무게를 잘라내며  

두자리 숫자의 예금잔고처럼

간밤의 그를 꼬나보듯 경직된 움직임을 쫒는다

지난 날의 꿈은 희미해진 세월에 맞물린

얼굴에 드리운 기미같은 것

눅눅해진 하루를 말리며 

꿈을 밀치듯 그의 흔적을 훔쳐내던 아내는
야간 근무에 눌린 졸음겨운 손끝으로 스위치를 끈다

창백한 가난의 그늘을 마저 지우듯 

 

창밖은 어둠을 깔고 앉은 해가 팽팽한 수직의 빛을 쏟아내고 있다

 

2010.05.27

광주예술 3호 양평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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