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세월

언어의 조각사 2010. 6. 6. 14:39

세월

                                                             김영미

 

돌멩이 하나가 물속에서 제자리를 지키려면

이끼를 끌어안아야 할 푸른 은신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아우성치며

저쪽 세월이 광장이라고 고집하던 곳은 잊은 채

내 안의 침묵, 그 무게가 더 깊은 망각을 부르는 날까지 버텨야 한다

모든 침묵은 바다로 가는 외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가는 항변이라는 것

때론 더 깊은 망각의 안쪽을 지켜야 한다고

더 푸른 이끼의 시간들을 덮고 있어야 한다고

곧은 무게의 다짐을 곱씹는 사이

거리로 나선 내 오랜 습성들이 궤도를 벗어나 흔들리기 시작했다

뿌리라는 건

불어날수록 깊어지는 나이테와

융화되지 못한 오늘의 찌꺼기도

끌어안고 버텨야 할 침묵의 통로다

기름진 광장의 유혹은 저 쪽의 몫으로 넘겨야한다

더는 잠길 수 없는 바닥의 깊이로 자신을 내려놓고

서덜밭 악몽도 품어 안고 가야한다 

긁힌 상처도 세월의 그림자에 묻히면 추억이 되는 것

어느덧

모난 돌, 내면의 깊이를 다져가는 곡선의 미학은 완성된다

날선 이성을 웅그리던 묵언의 세월 앞에

가시 돋던 언어는 모래알로 흩어지고

독기어린 맘은 먼지가 된다

소화되지 못한 오늘은

낡은 시간의 숙제로 묻어두고

돌의 무게만큼 갈앉은 바닥의 또 다른 침묵으로

뿌리 깊숙이 다지고 있다

 

2010.06.03

 

 

 

 

광주문학.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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