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171

꽃무릇

꽃무릇 김영미 맞잡을 수 없는 그대 향한 불꽃이다 내 안에 저장된 그리움 넘칠 때면 염불 소리 다진 뜰에 편지를 쓴다 일 년에 한 번쯤 하늘 한 귀 잘라서 못 다한 고백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묵언 수행으로 가슴에 묻은 사랑 그리움도 죄라, 누르고 눌러도 용수철 튀듯 내 안의 그댈 소문내고 싶어서다 잊은 줄 알았는데 불뚝 떠올라 가슴에 불을 질러 꽃이 된 그대여 내 맘도 꽃이다 온통 불꽃이다 2015.01.27 *꽃무릇-젊은 스님의 못 다한 사랑의 넋, 꽃말은 슬픈 추억. 시작 메모: 고창 ‘꽃무릇 축제’소식을 전하시며 고창문협 회장님께서 꽃무릇에 관한 시 한편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나는 꽃무릇의 꽃말을 알아내고는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내 존재의 마중물이다. 겨울에 태어나 혹독한 인생의 겨울을..

시작노트 2015.01.28

오후의 사랑

오후의 사랑 김영미 나무의 발등 덮은 마른 풀섶에서 날선 습기와 동행할 수 없는 유목의 길을 본다 오래도록 발설 않은 곰삭은 침묵으로 풋 기 덜어낸 여문 퇴색이다 낮은 곳으로의 질서와 시린 공복의 날들은 견고하다 사는 일이 때론 잎을 피워 그늘을 만들 때 까지 땡볕의 형량을 견뎌야 하듯 세상아래 엎드린 심미적 원근법을 깨워 삶의 負債를 갚아야한다 유랑하던 별들이 나무로 모여들고 나무는 제 몸 밝혀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 하루 안팎의 길흉으로 천년을 점치던 늙은 사랑이 긴 그림자로 흘러나올 듯 목 길어진 오후 푸른 은신의 시간으로 사막을 건너온 거대한 뿌리를 움켜쥔 실뿌리, 그 투명한 생 앞에서 헛짚은 잠언 같던 사랑을 점등 한다 비우고 묵힐수록 더욱 짙게 차오르는 빈 둥지 끌어안은 나무아래서 겸손한 사랑을..

시작노트 2015.01.02

가을 비망록

가을 비망록 김영미 볕을 모아들인 밤송이가 제 무게를 내려놓는다 비움을 채비하는 들녘을 품은 황혼에도 풍성한 어머니 마음이다 정화수에 담은 기도 같은 하늘 아래 햇살을 따라나선 지상의 그림자들은 태양의 음계 어디쯤에서 제 이름을 밝힐 수 있을까 온전한 사랑은 미수에 그치고 그리움은 고장 난 시계바늘처럼 침묵한다 햇살을 조각내며 덜 익은 불안조차 잠재우는 숲은 어머니 품처럼 생을 잇는 휴식처다 하루치의 온기와 습기들이 기압전선을 들썩이는 계절 구름은 더디 왔다 금방 잊히고 열매 쪼던 새들 행방 따라 노을 바라보는 황혼의 시선은 무심한 듯 무심할 수 없는 가늠 못할 시름이다 생의 긴 그림자 속으로 이름마저 실종시킨 버릴 것 많아지는 가을 나이테가 쌓일수록 불편한 동거도 늘어난다던 굽은 등이 빈 밤송이에 박힌..

시작노트 2014.09.04

맹골수도 우체통

맹골수도 우체통                          김영미  못다 핀 꽃잎들이 거리 저쪽에 쌓인다 이천십사 년 사월 십육일 차마 보내지 못한 이름들아득한 체온 담은 꽃편지 되어팽목항 파도에 반송되어 쌓인다 너의 바코드는 내안에서 신호를 보내는데유예기간 없는 기다림지금도 들려오는 차가운 벽 긁는 소리 열리지 않는 바다는 답신 없는 편지다 널 향한 발걸음 무겁게 갈앉는 날낡은 주소 안쪽의 추억을 두드린다염원의 등불 심지 돋우며달빛 소인 찍힌 네 꿈을 열람해본다 그날의 바다 각혈하듯 쏟아지는 꽃잎, 붉은 꽃잎들 해밝은 이곳은때늦은 장미가 꽃대 세우고꽃잎마다 태양을 복사중이다. 2014.06.15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며  열린사회, 따듯한 세상을 꿈꾼다.     착각의시학.14

시작노트 2014.06.16